한류 콘텐츠 열풍이 뜨겁다. 2020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데 이어, 올해 칸 영화제에서는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 배우가 각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된 <오징어 게임>이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에미상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BTS를 필두로 한 K-POP이 전 세계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한류의 영향은 다각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콘텐츠 판매와 관광 수입의 증가 등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한국이라는 국가의 이미지와 위상을 제고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무엇보다도 한류는 한국인의 자기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K-열풍의 한복판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가 가졌던 선진국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난 첫 번째 한국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더 이상 미국, 유럽, 일본 등을 따라잡는데 골몰하는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의 일등 시민이자 세계시민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을 갖는다. 

 이렇듯 새로운 세대적 주체성을 장착한 젊은이들이 이끌 한국의 과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논의를 좁혀, 우리 학교의 과학기술학도들은 이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데 어떤 역할을 담당할 것인가? 우리 학교의 전신인 키스트가 산업화와 경제 성장에 복무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설립된 연구 기관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조국 근대화와 경제성장은 키스트를 비롯한 여러 국책 과학기술 연구소가 공유했던 지고의 목표였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탑다운 방식으로 국가 경제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용적인 응용 기술의 연구가 전략적으로 강조되었다. 그 결과, 한국은 ‘추격자’의 이점을 살려 과학기술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며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단기간에 좁힐 수 있었고, 특히 산업과 직결된 전자, 반도체, 정보통신기술(ICT) 등의 분야에서는 눈부신 약진을 거두었다. 

 그러나 한국은 더 이상 선진국 따라잡기에 여념 없는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과거에 유효했던 ‘추격자’ 모델이 그 시효를 다한 이후,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새로운 비전이 요구되고 있다. 연구자들은 진리 탐구라는 궁극의 목표를 갖고 한국을 넘어서 인류 전체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만 함몰되지 않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대한 심도 있고 포괄적인 공부를 통해 우리 시대에서 과학 하기의 사명과 문제의식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부는 즉각적인 경제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분야뿐만이 아니라, 기초과학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와 장려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세계를 선도할 K-과학 열풍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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