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오래달리기를 하는 느낌이 든다. 근력이 부족해서인지 단거리 달리기는 항상 못했다. 몸보다 마음이 앞에서 달렸다. 그래도 독기 하나면 되는 오래달리기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 있었다. 시작할 때는 시작이니까, 중간쯤엔 앞으로 이만큼만 하면 된다는 마음 하나로. 항상 70% 정도에 큰 위기가 오지만 숨을 두 번만 참으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으로, 마지막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오기를 가득 담아 전력 질주했다.

 고 2 겨울이었다. 대부분의 활동이 그랬겠지만, 오래달리기 수행평가도 그냥 잘하고 싶었다. 사실 다른 무엇보다 조금 더 잘하고 싶었다. 이과반이라 적었던 체육 하는 친구들이 옆에서 이를 갈고 있기도 했고 단거리는 못 해도 오래 달리는 거? 그냥 이 악물고 뛰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던 것 같다.

 시작과 동시에 앞에 맛있는 거, 아니면 이상형이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뛰었던 것 같다. 오래달리기를 해본 적 없는 나는 첫 바퀴부터 전력 질주를 해버리는 바람에 도저히 속도를 줄일 수 없는, 말 그대로 내 한계에 도전하는 달리기를 해버렸다. 근데 뜻밖의 재능을 찾았던 것 같다. 숨이 너무 차고 어지러운 와중에도 정신은 또렷했다. 이건 그냥 다 지나가. 딱 이 생각으로 달렸다. 그리고 정신이 또렷해서 오히려 몸이랑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 숨차고 힘든 몸은 내가 아니다. 이런 유체 이탈의 경지에 올랐달까... 그래서 끝까지 달렸다.

 중간에서 걷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현실을 깨닫게 됐다는 말이 이쯤 나와야 할 것 같지만 미친 듯이 달리는 내 눈에는 앞에 놓인 길 말고 다른 건 보이지도 않았다. 시작은 너무 빠르게 했지만, 중간은 중간이라 마지막은 마지막이라 미친 듯이 달렸다. 그래서 결국 체육 하는 친구들을 이겼다.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1등으로 들어와서 바닥에 드러눕자마자 체육쌤이 '독한 년...'이라고 읊조렸다. 기분이 진짜 좋았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그런 것 같다. 그냥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사람. 그래서 결국 다 이겨버리는 사람. 그리고 지루한 수업을 피해 창밖을 구경하던 누군가가 이 광경을 지켜봤다. 그때부터였다더라.

 요즘 들어 자꾸만 오래달리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숨이 차고 가끔 멈춰서서 걷고 싶지만 마음만으로 나아갔던 그때가 생각난다. 사실은, 버티는 게 아니라 앞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아도, 볼 힘조차 남지 않아도 다 지나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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