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독서문화위원회 주관으로 지난해 9월부터 북클럽 지원 사업을 진행 중이다. 북클럽 지원 사업은 교수, 학생, 직원 등 교내 구성원 3인 이상이 모임을 구성하면 모임에서 함께 읽을 도서를 학교에서 지원하는 사업이다. 본지는 교내 독서문화 활성화의 일환으로 제1회 독서왕으로 선발된 우수 북클럽과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이번 호에서는 우리 학교 행정원 네 명이 모여 만든 북클럽 <책선원>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북클럽 <책선원>과 구성원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2021년 가을에 결성된 북클럽 <책선원(Book Navigator)>입니다. 바쁜 현대 사회의 메마른 직장인에게 ‘독서’는 멀게만 느껴졌는데 북클럽 제도를 통해서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빨리빨리 일 잘하는 법’이 아닌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을 배우고 있습니다.

박정기: 저희 북클럽의 이름인 <책선원>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선, 구성원이 모두 직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책임급, 선임급, 원급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서 직급의 앞 글자를 따서 ‘책선원’으로 지었습니다. 한편 클럽명을 영어로 번역하면 ‘Book Navigator’인데, 이는 “책의 세계를 마음껏 누비는 항해사(선원)가 되어보자”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박효은: 저희는 행동대장 1인, 지식인 1인, 둔산동 암기왕 1인, 책 읽는 아빠 1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행동대장을 맡은 교무팀 행정원 박효은입니다. 주로 모임 약속을 잡고, 책 리뷰를 정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잡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희는 주로 식사하면서 열띤 토론을 하기 때문에 제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다는 최대 장점이 있습니다. (웃음)

김세림: 지식인(웃음)을 맡고 있는 생명과학과행정팀 선임행정원 김세림입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평소 책읽기를 좋아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박정기: 둔산동 암기왕 행정발전센터 박정기 센터장입니다. 저는 항상 모임 전 주말에 둔산동 카페에서 책을 읽는데, 책의 많은 구절을 외워 와서 ‘둔산동 암기왕’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최배진: 책 읽는 아빠 코로나대응 과학기술뉴딜사업단 최배진 행정지원팀장입니다. 저는 저희 북클럽에서 읽은 책 내용을 토대로 아내와 독서토론 2차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도 제 모습을 따라 책을 읽고 있습니다. 북클럽 덕분에 일에 찌든 피곤한 가장의 모습에서, 지적인 아빠로 변모했습니다.

 

어떤 계기로 네 분이 모이셨나요?

김세림: <책선원>은 “책 읽어서, 나 주자!”는 단 한 가지 목적으로 결성되었습니다. 우리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남’을 위한 삶을 헌신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갈 때야 비로소 오롯한 ‘나’를 되찾지만, 다음 날 아침 출근길이면 다시 ‘남을 위한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나’에게 독서의 시간이란 그 어떤 선물보다 귀하고 값집니다. 그래서 우리 북클럽은 우리 학교에 북클럽 제도가 존속하는 한, 꾸준히 ‘나’에게 독서의 시간이라는 귀한 선물을 주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최배진: 코로나 시국에 탄생한 북클럽이지만, 저희는 오프라인 모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책도 책이지만 책을 읽은 후의 생생한 감정을 나누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점심 혹은 저녁 시간을 틈틈이 활용하여 북클럽 모임을 가지고 있어요. 대략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이고 있습니다.

 

북클럽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책을 추천해주세요.

박효은: 저의 추천 도서는 <사물의 뒷모습>입니다. 저희 북클럽이 처음 읽은 책이기도 한데요, 선정 당시에 북클럽 구성원들의 취향을 파악하지 못해 가벼운 수필로 선정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퇴근 후 독서가 일상의 작은 휴식이 되길 바라며 선정한 책이었습니다.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가 갑자기 끊기고 낯선 정적이 흐르는 순간을 독일어나 불어에서는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이 표현을 빌리자면 이 책의 글들은 내 안의 천사가 지나간 시간들의 기록이다.”라는 서문의 글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 모두 ‘갓생’(부지런한 삶—기자 주)을 사느라 잊고 있었던 많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내용들을 조금은 생경한 시각에서 되돌아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박정기: 저는 <그냥 하지 말라>라는 책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 책은 과거와 지금을 보고, 그 트렌드에 담긴 사람들의 욕망을 읽어내면 앞으로 찾아올 미래를 상당수 읽을 수 있다는 작가의 확신에 찬 주장을 데이터 기반으로 재미있게 풀어낸 흥미로운 책입니다. “나의 모든 행동은 내가 보여주는 메시지가 되므로 무턱대고 그냥 하지 말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며, 단순히 열심히 사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변화와 방향을 의심하고 고민하면서 성실해야 한다”는 주제는 책을 덮은 이후에도 많은 고민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작가의 연배가 꽤 됨에도 불구하고 건전하고 젊은 생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주도권이 있는 삶, 나만의 전문성이 있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입니다.

김세림: 저는 신지영 작가님의 책 <언어의 높이뛰기>를 추천합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 신지영 작가님의 수업을 들었는데, 매 수업이 끝나고 질문 한 개씩을 쪽지에 써서 제출하게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스스로도 호기심이 왕성하고, 학생들에게도 호기심을 강조하셨던 분이 쓰신 책이라니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작가님은 작가이자 언어학자이기 때문에 세상을 꽤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입니다. 다만 그 불편함은 정말 섬세하고 첨예해서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힘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시국 초창기에 ‘비말’, ‘드라이브 스루’ 등 낯선 단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던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시는지요? 작가님은 이렇게 어려운 말 대신에 쉬운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을 강조하시는데요. 어려운 언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응당 소외당하는 계층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꼭지마다 외국인을 소외시키는 언어, 여성을 소외시키는 언어 등 ‘언어’를 통해 어떻게 소외가 조장되는지 사회구조적으로 재미있게 분석하며 우리에게 생각해 봄 직한 질문을 마구 던지는 책입니다.

최배진: 저의 추천 도서는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입니다. 지금껏 우리는 제대로 된 대화 방법을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이 책은 말하는 방법뿐 아니라 듣는 방법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입은 하나이지만, 귀는 두 개인 이유는 바로 잘 듣기 위함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남을 인정하는 태도로 누군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가까운 가족의 말부터 잘 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특히나 자녀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또한 누군가가 나를 향해 상처 주는 말을 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었는데, 이 책에서는 “모든 것이 유한하다”는 해법을 주었습니다. 이는 상대방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든지 그러려니 하고 넘길 힘을 줍니다. 사람은 모두가 조금씩, 어쩌면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대화가 잘 풀리리라 기대하기는 힘든데, 이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대화의 물꼬가 트이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북클럽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계획을 소개해주세요.

박정기: 시간이 넘쳐서 독서를 하는 현대인은 몇 명 안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쁜 삶의 틈새에 밀어 넣었을 때 독서는 진정한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모두 직장인이고 또 각자의 가정이 있어서 더 많은 책을 읽고 자주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밥 먹는 시간을 할애해서 얼굴 보고 직접 느낀 바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언젠간 저희의 틈새에서도 지성이 싹 틔우길 바라면서요.

김세림: 아무래도 여러 명이 함께 책을 읽어야 하니 장르 선택의 폭이 한정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자기계발서, 트렌드 서적이 자주 선정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 번은 긴 호흡의 장편 소설을 시도해보려고 했는데, 현실적인 문제로 끝내 계획이 무산되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책을 선정하여 나 혼자서는 절대 읽을 수 없지만, 우리 북클럽이 함께이기에 읽을 수 있는 책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북클럽 활동과 관련하여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배진: 북클럽에서는 그 누구도 여러분의 독서에 점수를 매기지 않습니다. 특정한 구절에서 감동을 느끼지 못해도 괜찮고, 읽고 싶지 않은 꼭지는 생략해도 됩니다. 가끔 조모임이나 타 부서 협업을 할 때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재미없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지요. 북클럽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책을 읽는 자발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꼭 함께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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