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 - 『저주토끼』

(주)예스이십사 제공
(주)예스이십사 제공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대대로 저주 용품을 만들어 오던 집안의 할아버지는 오늘도 손녀에게 당부한다. 아름다워야 저주의 대상의 곁에 오래 남아 효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예쁜 겉모습으로 의심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일까. 이유야 어찌 됐든, 할아버지는 습관처럼 저주토끼에 얽힌 이야기를 시작한다.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는 복수를 위해 만들어진 토끼 전등이 복수 대상의 돈, 회사, 가족 등 삶의 모든 것을 갉아먹는 표제작 <저주토끼>를 포함한 10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주 토끼> 속 모든 소설은 환상적이고도 초현실적인 세상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쓸쓸하고 외로운 존재다. 그들은 낯설고도 매력적인 세상 속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단 한 번도 배우지 못한 것처럼 슬퍼하고, 분노하고, 좌절한다. 배신하거나 배신당하고, 살해하거나 살해당하는 소설 속 존재는 사회제도 혹은 타인의 가시 돋친 시선과 말에 의해 상처받는 현실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2017년 발행된 이 단편집은 정보라 작가가 대학시절 교내 문학상에 출품했던 단편 소설 <머리>에서 시작되었다. ‘주목받기 전, 마음 가는 대로 썼다’는 이 작품은 한강 작가의 <흰> 이후 국내에서는 4년 만에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영국의 부커재단은 <저주토끼>를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를 활용해 현대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참혹한 공포와 잔혹함을 이야기한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작가에게 출판을 제안한 출판사 ‘아작’은 불의가 만연한 지금 같은 시대에 부당한 일을 당한 약한 사람을 위해 복수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 이 단편집을 발행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보라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작품의 의도가 출판사의 해석과 반대에 있음을 밝혔다. <저주토끼>는 ‘원래 세상은 쓸쓸한 곳이며 복수는 경우에 따라 반드시 필요할지도 모르겠지만, 필요한 일을 완수한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쓸쓸하고 인간은 여전히 외로우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날이 갈수록 눈이 부시도록 화려해지고 있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어쩐지 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저주토끼>는 그만의 쓸쓸하고 고독한 방식을 통해 이 매서운 세상 어딘가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독자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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