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지 기자
©이윤지 기자

 곽재식 작가는 글 쓰는 일을 오랫동안 지속해왔다. 올해도 벌써 네 권의 개인 단행본과 다른 작가들과 함께한 두 권의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곽재식 작가는 작품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는 동시에 과학자의 삶을 살아오기도 했다. 그는 KAIST에 진학하여 이론 화학을 전공하고 회사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직을 맡고 있다. 과학도의 길과 작가의 길을 함께 걸어온, 곽재식 작가를 만나보았다. 

 

본인을 어떤 작가로 소개하고 싶으신가요?

곽재식 작가 (곽재식 작가 제공)
곽재식 작가 (곽재식 작가 제공)

 저는 꾸준한 작가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특별히 큰 성공을 거둔 대단한 소설도 없고, 엄청난 베스트셀러의 작가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틈틈히 꾸준히 깨작깨작 계속 글을 쓰면서 활동해 왔습니다. 글을 쓰다가 여러 번 망해 보았고, 열심히 쓴 글이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지는 일을 언제든 겪고 있으며, 글을 못 썼다고 무시당하고, 이런 글은 안 팔린다고 멸시당하는 일을 과거에도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계속해서 애쓰는 작가입니다.

 

가장 아끼는 작품이나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던 작품이 있을까요?

 한 두 편씩 제 소설을 팔아 본 경험을 처음 해 본 것이 2006년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딱히 무슨 잘 되는 책이 있었다거나, 특별히 화제가 된 소설은 없어서, 계속 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9년에 제 소설을 재미있게 봐 주시던 독자님들께서 서로 힘을 모아서, 제가 쓴 단편 소설들을 모아서 단편집을 직접 엮어서 발행해 나눠 가지는 일을 추진하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책이 결국 200권쯤 나왔고, 저도 3권인가 갖고 있습니다. 지금도 대단찮은 작가로 겨우겨우 버텨 나가고 있는 형편이지만, 그때 제 글이 좋다고 나서셔서 힘을 모아 주신 분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힘을 내게 됩니다.

 가끔 무슨 행사 같은 데서 여러 분들을 만나거나, 사인회 같은 것을 하면, 2009년 그때 그 책을 들고 오셔서 책에 서명을 해달라고 하시는 독자분이 계신데, 정말 반갑고 고맙고 감동합니다.

 

 ‘곽재식 속도’ 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작업 속도가 빠르신 것으로 유명하신데, 계속해서 흥미로운 글들을 쓰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가끔 농담으로 웃기려고 하던 이야기가 너무 많이 퍼지면, 그게 진짜인 것처럼 의미를 갖고 자리 잡게 되는 수가 있는데, 곽재식 속도도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따져 보면 아무 의미도 없는 속도입니다. 곽재식 속도는 반 년에 단편 소설을 4편 쓰는 속도입니다. 현재 단편 소설 한 편을 썼다고 해서 원고료로 100만원을 주는 곳이 드물기 때문에, 1년에 단편 소설 8편을 써서 모두 어디인가에 실렸다고 해도, 벌 수 있는 돈은 800만원 정도입니다. 이렇게 글을 써서는 최저임금의 삼분의 일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곽재식 속도가 느린 속도는 아니겠지만, 딱히 빠른 속도, 글을 많이 쓰는 속도도 아닙니다. 실제로 웹소설 등의 대중 소설을 쓰시면서 부지런히 작업하시는 분들이 글을 쓰시는 속도를 보면, 곽재식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른 경우가 허다 합니다. 따져 보면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입니다. 막상 글을 쓰는 것을 직업을 삼아서 부딪히면 다 알게 됩니다.

 곽재식 속도가 갖는 의미라는 것은 그 정도로 글을 꾸준히 쓰면서, 특별히 크게 성공한 책도 없는데도 다 때려 치우지 않고 어떻게든 생존해서 문학계에 붙어 있다는 점 정도일 것입니다. 이것은 직업으로 이 일을 해서 먹고 살겠다는 생각이 있으니 하게 되는 일입니다. 애초에 크게 성공해서 대문호가 될 꿈을 꾸지 않으니 망해도 붓을 꺾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고, 워낙 글이 안 팔리고 인기 없던 시기를 헤매던 시절도 있었으니, 그때를 생각하면 글을 써 달라는 곳이 많은 시기에는 부지런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KAIST에서의 경험이나 학교 졸업 후 공학도로서의 삶이 작가님의 작품 속 철학에 끼친 영향이 있을까요?

 저는 KAIST에서 지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재미있는 일도 많이 겪었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그 모든 것들이 그렇게 좋은 지, 몰랐습니다. 내가 원하는 재미있는 일이 안 생기는 것이 불만이었고, 더 친하면 좋을 것 같다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별로 그럴 것도 없었는데, 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외롭기도 했고, 재미없고 지친다는 생각도 종종 했습니다. 삶의 부족한 것에 매달리다 삶의 좋은 것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후회스러운 일입니다. 돌아보면, 잘 지도해 주신 교수님들께도 죄송스러운 생각이 들고요. 다만, 그런 삶의 후회와 아쉬웠던 순간들을 돌아보는 것이 사람의 감정과 인생의 고민을 소설 속에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인문학에 대한 경험과 이해도는 공학도의 삶에서 어떤 필요성을 지닌다고 생각하시나요?

 인문학과 공학이나 과학은 상반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학이나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인문학과 담 쌓은 사람이나 인문학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영역 중에 자기가 가장 열심히 할 전공을 공학, 과학으로 택한 것뿐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농담으로 이야기하는, 찐이과, 찐문과, 이과 체질, 문과 체질, 공대생 유머, 공대 기질, 이런 말들에 지나치게 빠지다 보면, 뭔가 공학을 잘 하면 저절로 인문학에 대한 습성은 감퇴된다는 식의 착각을 점점 당연하게 여기게 됩니다. 이것은 사실과는 다른 발상입니다. 예를 들어, 공학을 하는 사람은 건강을 중요시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하는 생각에 동의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문학의 여러 영역이 세상 사는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필요하고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공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좋습니다. 공학을 하면 사람이 기계적으로 변하면서, 문학, 역사, 철학, 외국어 등등의 영역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는 식의 환상은 과학자, 공학자가 처음 등장해 사람들의 눈길을 끈 20세기 영화나 소설에서 괴짜 과학자 같은 사람이 나오던 시절에 잠시 재미 거리로나 유효한 것일 뿐입니다. 과학자나 공학자도 그냥 일반인 중에 과학, 공학을 전공한 사람일 뿐이고, 일반인들은 대체로 다들 비슷하다는 상식만 있다면, 인문학의 가치를 별달리 특이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카이스트신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선배 중에 그나마 문학계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일을 하는 사람인데, 사회의 다른 많은 영역에서 눈부신 성과를 보여주시고 있는 많은 다른 선배들에 비해 문학에서 거둔 성과는 대단치 않아, 후배님들을 생각하면 항상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그래도 힘들고 지친 시기에 힘을 낼 수 있는 글을 꾸준히 써 보고자 애쓰고 있는 작가니, 가끔 시간 보내기 위해 소설을 읽고 싶을 때, 또 이런저런 분야의 교양에 관한 책들을 읽고 싶을 때, 제 책도 한 번 봐 주신다면 그것도 나쁜 경험은 아니리라 감히 말씀 올립니다.
 

곽재식 작가 신작 소개

1. <채널을 돌리다가>

 SF의 시대를 맞아 영화광인 곽재식 작가(이하 곽 작가)의 시선을 담아낸 SF 에세이집이다. SF의 기원부터 SF를 만드는 법과 보는 법, 그리고 SF의 현재까지 다룬다. 현재 SF 장르의 가장 큰 매력에 대해 묻자, 곽 작가는 “문학계, 영화계에서 SF에서 새로운 무엇인가가 나올 거라는 시각으로 왜인지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이런저런 관심과 새로운 작가들이 모이는 경향이 한국 문학계의 다른 분야에 비해 두드러져 보인다는 점이다”고 밝혔다. 이어, “SF가 이렇게 유행하는 현상이, 특히 문학, 출판에서 부각되는 나라가 세계에서 특별히 많지는 않은 것 같은데, 한국 문학계 나아가 문화계가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점은 재미있고, 눈 여겨 볼 만한 특징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2. <고래 233마리>

 곽 작가가 처음으로 낸 장편 역사 동화로 기존에 동화에서 잘 다루지 않던 청동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곽 작가는 “청동기 시대의 생활상,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의 특징 중에서 이야기 거리, 사람 사이의 갈등, 그 시대만의 독특함을 드러낼 수 있는 내용을 묶으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한국 청동기 시대에 대해 개괄하는 책, 논문, 연구 자료 같은 것들을 많이 찾아보았다”고 전했다. 

3.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곽 작가의 여덟 번째 소설집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주제들이 치킨집, 사무실, 관공서와 같이 우리와 익숙한 곳들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외계인들은 인류 관찰 보고서에 뭐라고 적을까?” 작고 일상적이며 발랄한 상상들이 곽 작가 소설들의 출발점이 된다. SF 소설의 소재를 찾는 방법에 대해 묻자 곽 작가는 “소설을 오랫동안 쓰다 보니, 항상 소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며 “무엇인가 재미있는 것, 글이 될 만한 것, 소설로 쓰면 좋겠다 싶은 것이 평소 떠오를 때마다, 목격하거나 생각날 때 마다, 항상 자주 메모를 해 두고 메모한 내용을 이용해서 소설을 쓰곤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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