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학교에서 어떤 사람들이 당신의 하루 속에 있었나요? 유심히 보지 않으면 지나쳤을 인연, 하지만 학교라는 장소로 이어져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우리 학교 문화기술대학원 이진준 교수가 내년 하반기 완공 예정인 교내 미술관 관장을 맡는다. 이 교수는 미술 관련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예술가로서는 최초로 우리 학교 전임교수가 되었다. 지난해 10월 미술관장직에 임명된 이 교수는 과학기술의 중심에서 어떤 미술관을 꿈꾸고 있을까? 경영, 예술, 철학 등 다채로운 길을 걸어온 이 교수에게 기술과 예술의 융합 그리고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에 관해 물었다.

이진준 교수 (이진준 교수 제공)
이진준 교수 (이진준 교수 제공)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현대미술가입니다. 특히,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미래의 예술과 공간 경험에 관심을 지니고 설치미술 및 뉴미디어아트의 영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대미술의 최전선에서 점점 더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예술가 학자(Artist Scholar) 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 TX랩을 이끌고 있고, 영국 왕립예술학회의 석학회원(FRSA)이면서 작년부터 카이스트 미술관의 초대 관장을 맡고 있습니다.

 

연구실 TX lab과 현재 진행하고 계신 연구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TX Lab에서의 ‘X’는 총체적 경험(experience)이면서 모호함(ambiguity)이기도 합니다. Data, AR/VR, XR, NFT, AI 등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여 예술과 건축, 디자인 그리고 공연(Future Opera)에 관한 작품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기술을 연구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남들이 한 번도 하지 않은 독창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그 기반이 되는 첨단 최신 기술의 활용을 연구합니다. AI 전공의 미국인 박사후연구원부터 예술 그리고 심리학 및 미술사 전공의 다양한 국적의 석박사 학생들과 연구자들이 함께 한국의 ‘MIT 미디어랩’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과학기술과 예술 그리고 인문학이 이상적으로 융합되어 머지않아 MIT 미디어랩을 넘어설 수 있길 기대합니다. 

 

다양한 학문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을 갖게 되신 이유와,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을 얻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원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습니다만, 공중파 PD를 거쳐 다시 미술대학으로 학사 편입해서, 조각을 그리고 영국의 왕립예술대학원(RCA)에서 영상(Moving Image) 및 Design Interaction 등을 전공했습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철학으로 귀결이 되어. 옥스퍼드에서 경계공간경험(Liminoid Experience)에 관한 논문으로 순수미술철학학위(DPhil)를 받았습니다. 20년 가까이 시간의 비선형성(Nonlinear Time) 및 경계공간(Liminal Space)에 관한 작품 연구를 주로 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로 빛과 소리처럼 비물질적인 재료들을 이용한 작업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가상현실 혹은 메타버스 시대의 질문과 맞물리는 예술적 접점들이 여기서 생겨납니다. 자연스럽게 융합 연구를 해 온 것 같습니다. 모든 배움과 경험들이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지금의 제 예술세계에 기여했습니다.

 

기술과 예술 간의 융합에 대해 연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가장 흥미 있으신 기술 주제는 무엇인가요?

 한국에 돌아오면서 그동안 AI 연구자들과 함께 진행되었던 Data Driven Arts, 특히 사운드 관련 작업을 우선 정리하고 있습니다. 식물, 돌 등 자연과의 교감을 바탕으로 한 Sound Sculpture, Data Sonification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들리는 정원 (Audible Garden)’이라는 이름으로 AI, XR 등을 이용한 미술관급 개인전 작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기타 해외 전시 스케줄에 맞추어 나만의 스피커를 만드는 등, Data Sculpture 작업도 기획이 되어 있습니다. 올해 말까지는 Post-AI에 실험영화(Arthouse film)를 계속 만드는 중인데, 장기적으로는 XR을 이용한 공연과 무대연출 및 Digital Twin 및 AR 기술을 이용한 물류창고, 사무실, 병원이나 미술관 등 공간에 관한 총체적 경험 디자인(Total Experience Design) 연구를 앞으로 더욱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KAIST 미술관을 ‘기존과는 다른 미래형 미술관’으로 만들겠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여쭤보아도 될까요? 

 미술품의 수집과 보존에 치중하는 근대적 케비넷형 미술관이 아니라 연구와 네트워크 그리고 교육에 집중하는 미래형 미술관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물리적 미술관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KAIST 미술관은 운영되고 있습니다. 

 캠퍼스 전체를 미술관으로 삼자는 총장님의 계획과 함께 물리적 한계를 넘는 메타 뮤지엄을 만들고자 노력 중입니다. 캠퍼스 전체에 조금씩 예술가들의 작품이 걸리고 많은 구성원이 자연스럽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작년 연말 KAIST 미술관의 첫 번째 공식행사로 AI+ART 포럼을 개최해서 전 세계 가장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와 연구자들을 불러 함께 토론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다음 가을학기에는 14분의 예술가, 이론가 등을 모셔 “예술론 특강: 미래의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개설하려 합니다. 학부 및 대학원생들 모두에게 열려있는 수업이니 많은 분이 참가해주면 좋겠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예술’은 무엇인가요?

'말할 수 없는 저 너머의 세계를 향한 자유로운(해방) 탐구'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제 스스로를 만족시킬 만큼 작품을 하기에도 인생이 너무 짧을 것 같아요. 더구나 세계적 수준의 실제 예술 현장은 그 어떤 양해를 구할 수 없을 만큼 냉정하고 경쟁이 심한 곳이라 매번 ‘최고’를 보여야 하는 긴장감과 ‘최선’의 감각을 유지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술가는 타고나는 것이라는, 그리고 우리는 인류를 치유하는 샤먼들이라는 생각을 더욱더 하게됩니다.  

 

우리 학교는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짊어진 곳에서 이제 세계적인 학교로 거듭나기 위한 문턱에 멈춰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멈추지 않고 늘 새로움을 향해 도전하고 실험하는 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대학입니다. 창의적인 융합인재가 그리고 새로운 미래의 예술이 분명 여기서 나올 겁니다. 우리는 고맙게도 그 순간을 함께 하고 있고요. 

이 외에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예술과 인문학을 통해 인간 본연에 대한 이해를 좀 더 충실히 하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반쪽 세계를 사는 것일 수 있습니다. 나중에 깨닫게 된다면 좀 슬프고도 무서운 일이죠.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인류애를 가지길 바랍니다. 한국이 아니라 환경, 전쟁, 기아 등 전 지구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이미 여러분은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더 크게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즐겁게 최선을 다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반짝이는 젊은 시절 여행도 많이 다니고 친구들과 열심히 잘 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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