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디에서 초등학교를 나오셨나요? 서울? 대전? 그렇다면 당신이 나온 초등학교는 한 반에 몇 명이나 있었는지 혹시 기억하시나요? 그렇다면 한 학년에, 그리고 초등학교 전체의 학생 수가 얼마나 됐는지도 기억하시나요? 여기 어느 시골에서 매우 작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의 학교에는 전 학년을 통틀어서 3개의 반이 있고, 한 반에는 학생이 서너 명씩 있습니다. 당신이 어떤 초등학교를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이 아이보다는 친구가 많았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아이는 학교에서 늘 보던 친구들과 놀고, 집에 돌아와서는 혼자 심심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이 아이에게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성장기를 생각해 본다면 이는 당연한 사실입니다. 

 

 이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자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CRAYON’이라는 단체입니다. 교내 교육 봉사 동아리인 SEED KAIST와 함께 진행하는 CRAYON 프로그램에서는 교내의 전산학부 연구실에서 자체 개발한 화상 통화 앱을 이용해 대학생 튜터가 아이와 1대1로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들은 때로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언니와 싸운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가끔은 책이 재미없다며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CRAYON 프로그램은 참여하는 대학생 튜터의 수가 전체 아이의 수보다 훨씬 많아 한 튜터는 일주일에 한 번, 15분씩만 투자해도 아이는 매일매일 새로운 선생님과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활동이 끝나고 다음 날이 되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모여 어제 만났던 튜터 선생님들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자신의 선생님이 더 좋다며 자랑을 합니다.

 현재 3기를 진행 중인 CRAYON 프로그램에 저는 작년 가을 2기부터 참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친구의 권유로 별생각 없이 참가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에도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후 프로그램의 규모를 확대하려 한다는 담당자분의 말씀을 듣고 제가 회장으로 있는 교내 교육봉사 동아리인 SEED KAIST와 CRAYON 프로그램을 연결하였고, SEED X CRAYON이라는 이름으로 30여 명의 초등학생, 그리고 100명이 조금 넘는 카이스트 및 충청권 대학생 튜터와 함께 3기에 튜터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다를 것 없이 유튜브를 좋아하고 웹툰을 좋아하며, 공부를 하기 싫어하고 잔뜩 쌓인 숙제에 툴툴대는 아이들의 모습은 10살가량의 나이 차가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했습니다. 동시에 저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칭찬 한마디에 좋아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은 저의 어릴 적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CRAYON 활동에 참여하는 다른 친구들 역시 아이들의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에 오히려 공부 중 지친 마음을 달래고 간다는 이야기를 해주곤 합니다.

 CRAYON 활동은 ‘봉사활동’에 대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에 몇 가지 변화를 더해주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단순히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타인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꽤나 신선했습니다. 기존의 봉사활동은 활동을 하며 함께 놀거나 이야기를 나누어도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부분이었을 뿐 ‘무슨 내용을 가르쳐 준다’ 또는 ‘무언가를 도와준다’ 등 봉사활동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CRAYON 활동에서는 그저 아이와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웃고 떠드는 것만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15분이 있나요? 반대로 가장 허무하게 보낸 15분은 언제였나요? 만약 별 것 아닌 짧은 시간으로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까지 쓸 수 있나요? 만일 마지막 질문에서 일주일에 15분 이상이라 답했다면 – 다시 말해, 하루에 2분 이상 – 시골의 어린 아이들과 함께 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