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학기 이맘때면 가장 즐거운 일이 있다. 기말고사 기간이 끝나면 바로 다가올 방학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학기 말이라 피로와 스트레스가 가득 쌓인 이 상황에서, 종강 후 펼쳐질 시간은 마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같다.

 학기 중에는 바쁘게 산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지만, 방학이 되면 축 처진다. 매주 반복되는 수업과 과제 기한 같은 대략적인 뼈대가 없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긴 시간이 주어지면, 계획된 일을 계속 미루면서 의미 없고 단편적인 시간 때우기만 되풀이하게 된다. 방학 시작 전에는 알차고 대단한 상상을 하지만 방학이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식이다.

 그럼에도 학부 3학년으로서, 지나간 4번의 방학 중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무턱대고 아무거나 배워보기’가 있을 것 같다. 기타, 요가, 발레, (아직도 고전 중인) 운전, 노래 등등 학기 중 신문사 활동으로 모아둔 돈으로 학교 근처 학원에서 정말 조금씩 배워보았다. 방학 처음부터 끝까지 2달 넘게 꽉 채운 것도 아니다. 미적미적 방학 한 달을 흘려보내다 이러다간 방학이 끝나겠다 싶어서 급하게 시작해 겨우 1달을 채운 정도이다. 기타는 코드만 잡고, 발레는 단지 개구리처럼 점프할 줄 아는 게 다지만, 나름 좋았던 기억이다. 학과 공부와는 다르게 성적에 대한 부담도 없고,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늘어지는 일상에 활력이 되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못하면 어떤가. 내 본업(전공)도 부업(신문사)도 아닌데! 나중에 “나 그거 ‘해 본 적’ 있어” 정도는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방학은 많이 쉬고, 많이 읽으면서 나를 채워가는 시간을 꿈꾼다. 산업디자인학과에서 학기 중에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구상하면서, 내가 관심 있고 흥미 있는 소재들을 탈탈 털어 사용하는 경험을 했다. 한 학기 모든 프로젝트를 어찌저찌 넘기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내가 관심 있는 분야들을 곳간에 다시 가득가득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서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서 읽고 싶었던 책을 여유롭게 꺼내 읽는 방학을 상상하며, 침대에서 나와 다시 과제를 잡는다. 학우들 모두 얼마 안 남은 학기를 잘 마무리하고 행복한 방학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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