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이 한국 경제의 중추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로 양분된 반도체 산업은 2018년 기준으로 국가 제조업 생산의 약 10%, 국내총생산(GDP)의 6.7%, 수출 비중 약 20% 내외를 차지한다. 우리 학교에서도 반도체 분야에 특화된 인재 양성을 위해 삼성전자와 손잡고 반도체시스템공학과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입학 정원은 2022년부터 2027년까지 총 500명 내외이며, 2023년부터 매년 100명 내외의 신입생을 선발할 예정이다. 카이스트의 탁월한 연구역량을 바탕으로 우수한 전문 기술 인력을 길러냄으로써 반도체 업계의 인력난을 해소하고 국가 경제에 일조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반도체를 기술력과 사업성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반도체 핵심 원료의 가격이 상승했듯이, 반도체 산업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최근 들어 세계 각국은 반도체를 산업만이 아니라, 국가 안보의 중요한 자원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대만은 자국이 보유한 최첨단 반도체 산업을 무기삼아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재부상한 중국과의 갈등을 피해갈 수 있었다. 애플, 테슬라 등 미국 빅테크 회사에 반도체를 독점 공급하는 대만 기업 TSMC의 존재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지정학적 가치가 한층 더 중요하게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대만과 한국이 세계1, 2 위의 반도체 생산국이 된 데에는 양국이 보유한 높은 기술력과 국가 차원의 육성 정책뿐 아니라, 반도체 생산의 글로벌 분업 구도를 들 수 있다. 그동안 반도체 산업의 종주국 미국은 고부가가치 산업인 반도체의 디자인 분야는 자국에 두고 생산 라인은 인건비가 상적으로 저렴한 해외로 옮기는 분업 체계를 선호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이 반도체의 안보상 중요성을 강조하며 글로벌 분업에서 자국 생산으로 방침을 변경했고, 이에 따라 국제 반도체 산업의 분업 지도가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올해 초 인텔사가 오하이오에 대형 반도체 공장의 설립을 발표했고, 삼성전자와 TSMC의 생산 공장도 막대한 세제 혜택을 받으며 미국 내 건립될 예정이다. 

 이렇듯 국제 반도체 산업 전반이 대대적으로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반도체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반도체와 같은 승자독식의 첨단 기술 산업에서 기술력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이에 더해 신냉전으로 치닫는 국제정세와 재편되는 반도체 산업의 역학 구도를 적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와 관련된 논의는 기술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국제 관계의 복잡한 망 속에서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하기 때문이다. 새로 출범한 카이스트 반도체시스템공학과도 전문지식만을 갖춘 기술자 육성을 넘어, 산업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안보적 이해를 장착한 국제적인 리더 양성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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