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독서문화위원회 주관으로 지난해 9월부터 북클럽 지원 사업을 진행했다. 북클럽 지원 사업은 교수, 학생, 직원 등 교내 구성원 3인 이상이 모임을 구성하면 모임에서 함께 읽을 도서를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본지는 교내 독서문화 활성화의 일환으로 제1회 독서왕으로 선발된 우수 북클럽과의 인터뷰를 502호부터 소개한다. 이번 호(504호)에서는 새내기 학우 3명이 모여 만든 북클럽 <철학 부전공>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북클럽 <철학 부전공>과 구성원 소개 부탁드립니다.

민지: 전산학부 이민지입니다. <철학 부전공>은 부전공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수준으로 철학적 지식을 배우자는 포부에서 시작한 북클럽입니다. 저희 셋 모두 새내기일 때 북클럽을 만들었습니다. 새내기 1년 동안 여러 전공을 탐색해보았는데, 저희 모두 KAIST에 개설되어 있지 않은 ‘철학’에 끌려 북클럽을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제인: 전산학부 유제인입니다. 독서와 철학과는 거리가 있었는데, 고맙게도 북클럽 활동을 통해 연이 닿았습니다. 더 이상 새내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진로를 탐색하고 많이 고민합니다.

윤지: 산업디자인학과 이윤지입니다. 철학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왠지 살면서 조금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함께하게 됐습니다. 게으름이 많고 읽는 속도가 느려서, 늘 책을 다 못 읽어오는 친구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북클럽에 합류하게 되셨나요?

제인: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가졌습니다. 공부를 통해 쌓은 지식을 실제로 활용하려면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문제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시야를 넓히고 통찰력을 길러야 하는데, 이 과정의 열쇠는 철학과 독서임을 깨달았습니다.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제 사고방식과 시야에 변화를 주고자 북클럽에 참여했습니다.

윤지: 북클럽을 하고 싶은 마음은 계속 있었습니다. 저는 말하는 걸 좋아하는데 북클럽에서는 눈치 안 보고 마음껏 긴 이야기를 할 수 있잖아요. 서로 이야기를 경청하게 되고요. 게다가 책을 읽고 말하는 거니까 말할 내용이 부족할 일도 없고 주제도 쉽게 통일할 수 있죠. 책 읽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사실 토론하고 싶은 마음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혼자 하는 생각은 고이거나 휘발되기 마련이니까 뻔한 이야기도 입 밖으로 자꾸 꺼내야 하는 것 같아요. 어렵거나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문장을 보면서 각자가 해석한 방식을 나누고 예시를 떠올리다 보면 머리에 남는 말이 많더라고요.

 

북클럽 활동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나요?

민지: 저희는 철학 입문서와 철학자의 저서를 읽고 몇 개의 논제를 정해 토의를 진행합니다. 또 각자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문장과 이유를 소개합니다. 이때 책에서 언급된 철학적 지식에 그치지 않고 사회학, 정치학은 물론 과학이나 저희의 일상에 관련된 주제를 정해 토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를 읽었을 때는 책의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논제 외에 ‘오픈 소스와 개발자 문화’라는 프로그래밍 관련 논제로도 토의했습니다.

 

북클럽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책을 소개해주세요.

윤지: <여성의 종속>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일상에서 인권 문제와 정치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옛날 사람들도 사회에 살면서 비슷한 문제를 겪었을까?’, ‘당시 사람들은 그 문제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가 궁금해질 때가 많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비슷한 문제를 헤쳐 나갔다면 우리도 비슷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적어도 옛날 사람들의 시행착오를 참고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겠지요. 존 스튜어트 밀은 이 책에 자신이 살던 시대 여성의 권리문제에 관해 자신의 통찰을 적었습니다. 1869년에 출판되었지만, 책에 쓰인 내용은 지금의 사회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현대에 하는 문제 제기를 150년 전에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또 나아지거나 달라진 점을 보면서 앞으로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나름의 추측을 내놓을 수도 있었습니다. 꼭 이 책이 아니어도, 관심 있는 주제가 있다면 그 분야에 대한 옛날 사람의 관점을 한 번 살펴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제인: 저는 처음 읽은 책인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 책은 철학의 여러 분야를 얕게 다루는 입문서입니다. 시간순으로 정렬되어 있어서 금세 흥미를 잃게 되는 다른 철학 입문서들과 달리, 이 책은 현실의 쓸모에 따라 사람, 조직, 사회, 그리고 사고의 네 분야로 나누어 각 주제를 소개합니다. 이 책의 특징은 어려운 철학적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예시를 든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저자는 페르소나* 이론을 설명하며 소셜 미디어를 예시로 듭니다. 우리는 환경에 따라 분리된 페르소나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소셜 미디어로 인해 그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균형이 망가집니다. 결국 감당하기 힘든 페르소나로부터 도망치게 됩니다. 저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공감이 되었고, 더 나아가 그동안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던 감정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 책은 여러 철학적 개념을 쉽게 설명하고, 더 나아가 독자가 자기 삶에 이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민지: 제가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책은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입니다. 이 책의 주제인 구조주의는 책의 두 문장을 인용해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생각만큼 자유롭거나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자기가 속한 사회 집단이 수용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기 마련이다.” 즉 구조주의는 구조가 우선하고 인간의 선택은 그 촘촘한 그물망에 지배된다는 사상입니다. 여기서 구조는 규범도, 언어도, 사회도, 국가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과 달리 구조주의는 비교적 최근의 사상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받아들이기 쉬운 사상입니다. 예를 들어 세상은 물, 불, 바람,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는 그리스 철학책을 읽으면, 우리가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을까요? 한편, 구조주의가 주장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차별적인 언어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차별을 줄일 수 있다”, “우리의 소비는 완전히 주체적인 선택이 아니라 기업의 마케팅의 결과다”. 현대인인 우리에게 익숙한 주장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편하게 읽히고 공감하기 쉽습니다.

 

북클럽 활동을 하면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민지: 철학을 주제로 한 북클럽을 하며 아쉬웠던 점은 입문서보단 어렵지만, 전공서보단 쉬운 깊이의 철학 도서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처럼 철학자가 직접 쓴 서적은 너무 어려워서 두 번에 나눠 토의했습니다. 반대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와 같은 입문서를 읽을 때는 조금 더 깊이가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윤지: ‘사회나 경제, 권력의 역사와 작동 원리를 잘 알았더라면 좋았겠다’ 싶은 순간이 많았습니다. 어떤 분야이든 기본을 많이 아는 사람은 같은 내용을 보고도 더 많이 깨달을 수 있는데, 기본을 모르다 보니 알아듣기 어려운 문장도 많고 단어나 개념도 계속 찾아봐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건 좋은 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기본기를 다지는 거로 생각하면 말이죠!

 

북클럽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나요?

윤지: 북클럽의 가장 큰 매력은 클럽원과 최선의 생각을 나누도록 한다는 점 같습니다. 평소엔 표면적이고 단순한 이야기를 하는 사이여도, 책을 같이 읽고 이야기하면 아주 세밀한 주제로 의견을 말하게 됩니다. 이 과정이 무척 즐거워서 북클럽 활동이 예상치 못하게 길어지기도 합니다. 한 번은 밤 10시에 모임을 시작했는데, 다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느라 새벽 1시를 넘었습니다. 점잖음과 일상을 넘나드는 이런 모습이 바로 북클럽의 묘미 아닐까요?

제인: 저도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평소에는 들을 수 없는 개인적인 경험과 감상을 나누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며 서로 다른 경험을 떠올리고, 이를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경험이 참 소중했습니다. 또,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 순간도 기억에 남습니다. 화면 너머로만 보던 친구를 처음 만나 같이 책을 읽었던 날이 생각납니다. 평소에는 책 읽기를 과제처럼 여겨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친구와 같이 읽으니 그런 부담이 전혀 없어 신기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소개해주세요.

민지: 철학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철학자의 이름이나 사상을 나열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사고방식으로 다른 것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철학에 그치지 않고 사회학, 정치학, 예술이론 등 철학과 관련이 깊은 인문학 서적을 폭넓게 읽으려 합니다. 또한 북클럽 독서왕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면서 토의를 잘하는 것만큼이나 토의 내용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것이 중요함을 느꼈습니다. 말을 글로 옮겨 적으며 주장을 더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논제, 요약, 인용, 토의의 구성으로 토의록을 성실하게 작성하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북클럽 활동과 관련하여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인: 우리 학교 학생들은 정말 바쁘게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시간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여유가 없어서 책을 읽고 싶어도 스스로 책 한 권 읽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제게 공감하신다면 북클럽 활동을 시작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혼자서는 절대 못 할 것 같은 일도 같이하면 너무나 쉬운 일이 됩니다. 마음 맞는 사람들을 모아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으며 여유를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페르소나(persona)*
고대 그리스 가면극의 가면에서 유래하여, 자신의 본성을 감추거나 다스리기 위해 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과 질서, 의무 등을 따르는 것을 뜻함. 카를 구스타프 융은 페르소나 이론에서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지니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사용하여 관계를 이루어 간다고 설명한다.

©이윤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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