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김종신 -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주)영화사진진 제공
(주)영화사진진 제공

 북한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판문점이 있는 도시, 파주. 이곳 문발동에는 출판사들과 영화사들이 줄지어 있는 파주 출판도시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도시가 점하고 있는 위상은 꽤 독특하다.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출판문화를 위한 산업단지이자 접경지역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독자적으로 설계된, 오직 출판업을 위한 도시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영화는 출판도시의 청사진을 그린 사람들의 입을 빌려 파주 출판도시의 탄생과 걸어온 길을 추적한다. 아이러니하지만, 책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꿈은 책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구속될 수 있었던 시대에 시작되었다. 엄혹한 시대를 겪으며 출판인들은 마음 놓고 책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꿈꿨다. 조금 더 번듯한 공간에서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그렇게 언뜻 보면 무모해 보이기도 하는 출판도시 건설 계획이 시작되었다.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부지를 정하고, 산업단지 지정을 위해 각종 정부 부처들과 논의를 거듭했다. 나아가 전 세계를 돌며 파주 출판도시의 모습을 고민했다. 여기에 승효상, 민현식 등 건축가들이 합류하면서 출판도시는 골격을 갖추기 시작한다. 출판인과 건축가가 참여해 2000년에 체결한 건축설계 계약이 ‘위대한 계약’,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이다.

 영화의 훌륭한 점은 이렇게 만들어진 파주 출판도시가 이상적이고 완성된 도시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여전히 출판 산업의 침체, 도서 문화의 정체 등이 요인이 되어 사람들과 출판사들이 이곳을 떠나기도 한다.

 이 문제는 현재진행형이지만, 극복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우선 영화 제작사들이 들어서며 출판도시는 점차 종합 문화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사람들이 사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생태 체험시설, 미술 공방, 예술 학교 등 문화 시설과 주거 시설을 두어,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영화를 감상하고 나면 쉽게 잊혔을지도 모를 파주 출판도시 속에 담긴 내재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자신의 이상을 건축과 예술로 실현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출판인들과 건축가들의 협업을 101분의 상영시간에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도 영화의 장점이다.

 영화를 제작한 건축 전문 영화 제작사 ‘기린그림’ 소속의 김종신, 정다운 감독은 이번 영화로 제12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예술공헌상을 받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들 감독은 전작 <이타미 준의 바다>를 통해 건축 영화를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영화를 감상한 뒤 하루쯤은 ‘책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책이 만드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 갈대숲을 낀 책의 캠퍼스를 거닐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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