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림 기자
©이예림 기자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는 한국 역사를 겪어낸 디아스포라(diaspora: 고국을 떠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애플TV+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한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부터 재일조선인까지 총 4세대의 삶을 다룬 소설로, 나라를 떠나게 된 이민자들의 삶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여준다. 소설의 첫 문장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는 역사의 흐름을 극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그 거센 파도에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전한다. <파친코>에서 등장하는 재일 한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인구수의 10%가 넘는 사람들이 다양한 나라로 이주하고 정착해 그들만의 네트워크와 문화를 구축해왔다. 본 기사에서는 이처럼 거주국과 모국 사이의 경계에 놓인 자들인 디아스포라와 그들의 삶이 담긴 문학 작품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디아스포라(diaspora)의 개념

 디아스포라는 ‘씨를 뿌리다’라는 그리스어 ‘dia sperien’에서 유래된 말로, 기원전 8세기 그리스 도시국가가 지중해 지역에 식민지를 설치해 지배하던 당시 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당시에는 식민지 경영을 위해 그리스와 식민지의 밀접한 연결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지만, 기원전 5세기의 철학자들에 의해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며 식민주의로 인한 분산과 해체의 의미를 띠게 되었다. 이후 근현대사에서 이민자, 난민, 망명자, 이주노동자 등이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게 되자, 어디에도 온전히 소속되지 않는 이들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정치, 인권 문제 등과의 연계성을 설명하기 위해 디아스포라 개념이 사용되고 있다. 디아스포라는 모국에서 떠나온 뒤 어떤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나뉜다. 거주국에서 사회에 잘 동화하는 집단이 있는가 하면, 차별과 소외의 경험으로 모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 집단도 있다. 또한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지만, 거주국에 동화되지도 않은 채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는 집단의 디아스포라도 존재한다.

 

국가별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

 재외한국인을 일컫는 말인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일제 식민지 통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발생했다. 분산의 역사는 세계 여러 민족에 비해 짧지만, 일본, 중국, 미국, 캐나다, 독립국가연합* 등 다양한 정치체제에서 적응을 시도했다는 특징이 있다. 빈곤과 국권 상실 등의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었고, 그중 문학적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현지어로 문학작품을 써내 한국적 경험을 담아냈다. 어디서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경험을 기반으로 쓰이는 디아스포라 문학의 주인공들은 자신을 한국인과 동일시하지도 못하고, 거주국의 시민으로서도 인식하지 못하는 이중적인 정체성을 드러낸다.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삶의 애환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자신을 외국으로 내몬 모국에 대한 원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렇듯 디아스포라 문학은 한국사의 굴곡을 표현하면서도 역사의 큰 줄기 바깥에서 개인이 겪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경계의 문학’이라 불리기도 한다.

 재외한인이 다양한 국가에 분산되어있는 만큼, 문학작품에서도 그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먼저, 중국으로 이주한 한인인 조선족은 중국 공민으로서 중국 사회에 동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조선족의 문학은 초기의 이민문학에 중국적 특성을 가하며 시작했다. 이후 조선족 문학은 중국사회의 변화에 따라 발전해왔는데, 해방 이전에는 계급문학**이 발전했으며 해방 직후에는 조선족 집단을 중심으로 민주개혁과 항일투쟁을 다루는 문학이 등장하기도 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민족문학에 대한 논의가 금지되어 조선족 문학의 발전이 정체되는 듯했으나, 문화대혁명의 비극과 상처를 고발하는 상처소설, 그 원인에 대한 역사적 반성을 추구하는 반성문학 등이 문화대혁명 이후 등장했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으며 교류가 활발해지자 조선족 문학은 민족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모국과 동질성보다는 강한 이질성을 느꼈으며 한국에서 발생하는 갈등으로 조선족은 중국 공민적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허련순 작가의 <바람꽃>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한중수교 직후 조선족들이 한국인에게 동포로서의 정을 느끼지 못하고 중국 공민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화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2000년대에 들어 한국 정부의 이민정책이 변하자, 허련순 작가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여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 <중국색시> 등을 통해 조선족으로서 겪은 정체성의 혼란을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대해 아픔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중앙아시아 지역의 고려인 문학에서는 체제에 순응하는 태도와 이방인으로서의 성격이 동시에 보인다. 중앙아시아의 재외한인은 강제 이주로 정착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러한 경험은 당시 지배 체제에 순응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귀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자 민족 정체성 또한 약화된 고려인은 문학을 통해 희미하게나마 고향을 그리워하고 귀향을 희망했다. 조명희, 계봉우, 한병철 등의 문인들이 1923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창간된 신문 『선봉(先鋒)』의 지면을 통해 이러한 방랑자 의식을 드러내며 낯선 땅에 정착하며 겪는 삶의 애환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한편 미국으로 떠나 작가로 성공한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 이창래는 데뷔작 <네이티브 스피커>를 통해 헤밍웨이재단상, 펜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을 쌓고, 뒤이어 나온 <제스처 라이프>라는 작품을 통해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 20인에 선정된다. <네이티브 스피커>의 주인공 헨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는 목록을 나열하는데, 이 목록에서 헨리는 비밀스러움, 불법 외국인, 이방인, 반역자, 스파이 등의 단어로 규정된다. 헨리가 마지막으로 발견한 쪽지에는 ‘언어를 거짓으로 말하는 자(false speaker of language)’라고 쓰여있다. 아시아인으로서 영어를 사용하며 미국에서 살아가는 헨리와 그의 가족들에게 영어는 차별의 근원이자 권력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헨리는 영어 발음이 서투르다는 이유로 동급생들에게 무시당하는 수치를 겪으면서도 아버지에게 반항할 때는 아버지가 모르는 단어를 이용해 영어의 힘을 사용한다. 이처럼 작가는 영어의 힘으로 삶의 모양이 바뀌는 양상과 언어가 타인과의 관계, 사회에서의 위치에 끼치는 영향력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소설에서 언어 문제로 대표되는 재미 한인의 고통은 정체성의 혼란, 인종차별, 가난 등 한인들이 미국 사회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다양한 차원의 문제를 보여준다.

 

 ‘자이니치’ 의 정체성

 일본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문학 세계는 다른 나라의 디아스포라 문학에 비해 투쟁, 저항, 민족정신, 망향 의식 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제국주의 국가인 일본 땅에서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된 재일 한인은 식민 지배와 더불어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조건으로 인해 더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특히 일본 내의 디아스포라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세대별로 자신의 민족성과 정체성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상이하다는 것이다. 이주 역사 초기의 이민자들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경험했기 때문에 모국과 강하게 연결된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회성 작가의 <다듬이질하는 여인>이 이러한 특성을 보여준다. 러시아 사할린에서 태어난 이회성 작가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일본에 정착해 문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의 소설 <다듬이질하는 여인>은 조국을 떠나 살아가는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를 철저히 한국적인 정서로 표현하며 조국의 분단을 슬퍼하며 끝맺는다.

 한편, 2, 3세대 재일 한인은 스스로를 ‘조선’, ‘한국’이라는 국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이니치’(재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경계인으로서 탈민족적인 성격을 보인다. 조국과 민족, 세대 간의 갈등, 이념적 대립과 같은 무거운 주제보다는 일상을 주제로 가볍고 밝은 형태로 자이니치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유미리, 현월, 가네시로 가즈키 등이 이러한 작가군에 속하는데 이 중 가네시로 가즈키는 <Go>, <레벌루션 No. 3> 등의 책부터 다양한 드라마의 각본을 집필하는 작가로 활동하며 유쾌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후세대 이민자의 이야기

 1세대 이민자가 아닌 후세대 이민자들이 구축한 예술 세계는 구세대 이민자의 문학 세계와 확연히 구분된다. 후세대 이민자들의 작품에서는 이전 세대와 구분되는 정체성으로 인한 세대 갈등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지역을 불문하고 민족 정체성은 약화되고 경계인으로서 모국에 대해 느끼는 낯선 감정은 강화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파친코>, <미나리> 등의 작품이 이러한 감정을 담고 있는데, 해당 작품 속 주인공들은 고향에 강한 그리움을 느끼는 부모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고 집 밖에서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사회에서 겉돌며 소외감을 느낀다. 소설 <파친코>에서 선자의 손자 솔로몬이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그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못한 채 성공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은 후세대 이민자의 특징을 보여준다. 고향에 대한 강한 그리움을 느끼는 선자와 달리, 솔로몬에게 역사는 그저 지나간 일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것은 민족이나 나라가 아닌 물질적인 가치이다. 이러한 감정은 재일 한인만의 것이 아닌, 해외 이민자들에게서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감정이다.

 

 재외한인 작가의 작품은 거주국 문단에서 큰 호평을 받고 난 후에야 우리나라에서 주목받는 경우가 많다. 작품이 현지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외국 문학으로 소개되곤 하기 때문이다. 적응과 극복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디아스포라 문학은 개인의 삶에 대한 보편적 가치를 고민하게 만드는 동시에 한국 사회가 잊은 역사에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파친코>에서 선자 역을 맡은 윤여정 배우는 한국의 대중예술이 갑자기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이유에 대해 묻는 질문에  ‘우리에겐 언제나 늘 좋은 영화, 드라마가 있었다. 단지 세계가 갑자기 우리에게 주목할 뿐이다’ 라고 답했다. 재외한인들 역시 언제나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이를 표현한 예술 작품을 가지고 있었다. <파친코>의 성공으로 그들의 삶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경계에 놓여야만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제야 시작됐다.
 

독립국가연합*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이 소멸되면서 구성공화국 중 11개국이 결성한 정치공동체
 
계급문학**
무산계급의 해방을 위해 노동자, 농민 등을 대상으로 삼는 계몽적 성격의 문학

 

참고문헌 |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의 정체성 연구>, 장윤수, 
<코리안 디아스포라, 재외한인의 이주, 적응, 정체성>, 윤인진,
<파친코>, 이민진, 문학사상, <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나무와 숲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