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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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 수록된 박노해의 시 <우울>엔 이런 문구가 있다.


세상의 모든 우울이란
찬란한 비상의 기억을 품은
중력의 무거움이니
날자, 우울이여!

 

감정의 하강 나선과 상승 나선

 우울함으로 대표되는 부정적인 감정은 하강 나선을 형성한다. 공이 중력에 의하여 바닥으로 하강하는 것처럼 우울은 계속하여 깊어진다. 감정이 감정을 낳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게 아니다. 반복되는 굴레를 끊을 한 번의 행동이면 충분하다. 그 하나의 상승 나선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이 글은 감정, 그중에서도 부정적인 감정을 중점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효과적인 방법들을 과학적인 근거와 함께 제시한다. 

스스로 우울증이 의심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고 해도 이 글의 내용은 도움이 된다. 뇌가 건강하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신경과학의 보편적 원리는 대게 동일하기 때문이다.

 

감정의 정의와 진화

 도대체 감정이란 무엇일까? 사전 속에 가득한 모든 감정들이 정말로 실재하는 것일까? 감정은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접했을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기분'으로 정의된다. 추상적인 서술은 이유가 있다. 아직 우리는 감정을 완벽히 모른다. 감정을 분류하는 기준조차 합의된 중론이 없다. 구성주의적 관점을 지닌 학자는 "감정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라고 주장하며 그 수가 무한히 많다고 주장한다. 생물학적 관점을 채택하는 학자들은 "신체적 지표를 토대로 감정을 분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위와 같이 감정의 분류와, 생성 원리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상 생활에서 인간은 감정을 경험하며, 이는 오랜 시간 진화를 통해 생긴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얼굴 표정을 기반으로 감정을 분류한 폴 에크만은 '동물에게 삶의 근본적인 과제를 처리하도록 돕는 장치'라고 감정을 정의한다. 뇌에 초점을 맞춰 문장을 바꾸면 감정은 '주어진 환경에 대하여 적절한 반응을 하도록 진화된 신경회로 시스템'이다. 맹수가 나타나면 도망을 촉진하기 위해 공포를 느낀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지속적인 열량 섭취를 장려하기 위해 기쁨을 느낀다. 유전자의 확산에 이로운 행위를 하도록 추동하는 동인이 바로 감정인 것이다.

 감정은 진화론적으로 이롭다. 이 말을 곱씹다 보면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인간은 쉽게 불안을 느끼며 고통을 경험한다. 이것이 뭐가 좋단 말인가? 그러나 불안, 슬픔 등의 부정적 감정들은 저마다의 진화론적 효용이 있다. 

 불안을 느낄 줄 아는 개체들은 눈앞의 위험한 상황을 피해 달아나며 유사한 상황을 회피할 확률이 크다. 분노는 삶의 통제감을 증가시킨다. 슬픔은 사회적 집단의 응집을 간접적으로 촉진한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생명체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말이 나한테도 이롭다는 뜻과 동치는 아니다. 이쯤에서 두 가지 명제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감정은 보통 유전자의 확산에 이로웠다. 따라서 그러한 감정을 쉽게 느끼도록 진화했다’라는 점과 '느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며 그것은 나의 행복에 있어 마냥 이롭다'는 말은 완전히 다르다. 유전자에 좋았던 것이 나에게 항상 좋을 거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은 부정적인 감정에 민감하도록 진화했다. 실제로 부정은 같은 양의 긍정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정신생리학(PEP) 연구소 책임연구원인 프레드릭슨은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이에 따르면 부정을 상쇄하기 위해선 통계적으로 3배의 긍정이 필요하다. 평균적으로 하나의 비난을 이겨내기 위하여 세 개의 칭찬이 필요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부정적인 감정들은 진화론적으로 도움이 된다. 따라서 인간은 부정적인 요소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다. 그리고 그 예민한 뇌는 이제 고농도의 스트레스와 자극으로 가득한 현대 사회에 놓여졌다. 우리는 감정들을 적절하게 다루는 법을 익혀야 한다. 

 

상승 나선을 향해: 감정 인식, 운동, 만남

 세 가지 방법들을 소개한다. 모두 효과적이나 무엇이 가장 이로울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첫 번째는 감정 명명과 인식이다. 본인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선명하게 명명하고, 관련된 배경을 글로 쓰는 것만으로 감정은 상당히 안정된다. 두 번째는 운동이다. 운동은 항상 이롭다. 유익한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촉진하고 중독과 관련된 뇌회로를 바꾼다. 그리고 새로운 신경세포의 생성에 도움을 준다. 세 번째는 사람과의 상호작용이다. 모든 동물들이 사회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햄스터는 다른 개체랑 같이 사육하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인간을 비롯한 사회적인 동물들은 다르다. 친밀한 개체가 한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의 수치가 극심하게 감소한다. 이 부분은 동물행동학적 근거로 설명된다. 이 효과는 내성적인 사람에게도 동일하다. 

©박정민 기자
©박정민 기자

1) 감정 인식

 감정 인식이 중요하다는 점은 모두가 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분석하는 게 효과적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여기선 이를 살핀다. 

 감정인식명확성은 구체적인 감정 상태를 명확하게 인식, 이해, 구분, 명명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감정인식명확성이 중요하다는 연구결과는 많다. 메이어의 연구에 따르면 감정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명확히 구별한다. 따라서 타인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립심을 유지할 수 있다. 골드맨은 높은 감정인식명확성이 있으면 부정적 기분으로부터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 벡의 연구에서는, 감정인식명확성에 따라 덜 우울해한다고 보고하였으며, 피터 샐러비는 낮은 감정인식명확성은 신경증, 스트레스 취약성, 감정 표현 갈등과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감정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쉽고 좋은 수단은 글로 감정을 기록하는 것이다. 실제로 UCLA 심리학자 매튜 리버만의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 감정을 글로 표현하게 했을 때 뇌의 감정적 반응이 상당히 줄어들어들고、논리적 사고에 매우 중요한 전전두엽이 활성화되었다. 감정을 글로 기록하는 데 있어, 임상에 있는 전문가들은 다섯 개의 요소로 구성된 감정 분석 도구를 제시한다.

 

사실: 객관적으로 발생한 사실은 무엇인가? 
생각: 사실로부터 직관적으로 떠오른 생각은 무엇인가? 
감정: 어떠한 감정이 느껴지는가?
신체 감각: 신체에서는 어떤 느낌이 드는가? 
행동 충동: 어떤 행동을 하려는 충동을 느꼈는가? 

사실: 남자 친구가 밤에 전화를 안 했다.
생각: 그가 나를 예전만큼 사랑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감정: 불안하고 화가 난다. 
신체 감각: 가슴이 답답하고, 얼굴에 열이 올라왔다.
행동 충동: 당장 끝내자고 말해야겠다.

 

2) 운동

 운동은 신체를, 그중에서도 뇌를 건강하게 만든다. 운동이 어떻게 뇌를 강하게 만들며, 어떤 운동이 뇌에 적합한 것일까?

 뇌에서 신경세포는 신경전달물질을 이용하여 서로 정보를 소통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신경세포에 어떤 신경전달물질이 전달되는가?’이다. 기분과 관련한 신경전달물질들 중에 대표적인 3가지를 들자면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그리고 도파민이 있다.

 ‘항우울제’라고 불리는 약물의 대부분은 세로토닌을 표적으로 삼는다.  세로토닌 수치를 끌어올려, 동기부여와 의지력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준다. 운동은 천연 항우울제의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세로토닌 활동을 촉진한다. 헬스장에 가거나 트랙을 열 바퀴 도는 식의 거창한 운동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연구에서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기만 하면 세로토닌은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항우울제가 다음으로 많이 타깃으로 삼는 신경전달물질은 노르에피네프린이다. 독일의 한 연구팀에 의하면 운동이 노르에피네프린 역시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은 도파민이다. 도파민은 쾌락, 의사결정, 집중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물질이다. 또한 도파민은 중독과 가장 깊은 연관이 있다, ‘코카인’이라는 마약은 본질적으로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하여 쾌락을 얻고, 그 쾌락에 중독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도파민계를 통제하는데 운동이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의 연구팀이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그들은 흡연자들에게 15시간 동안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후 한 그룹은 10분 자전거를 탔고, 한 그룹은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어서 두 그룹 모두에게 담배를 제시하고 fMRI로 뇌를 측정했다. 결과는 놀랍다. 운동을 한 그룹에서는 중독과 관련된 뇌부위에서 활성이 확실하게 감소하였다는 것이다. 고작 10분 한 운동이 도파민 회로에 영향을 주었고, 중독을 이겨낼 의지력을 키운 것이다. 

 운동은 기분을 좋게 하고 통제력을 준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새로운 신경세포의 생성을 돕기도 한다. 뇌의 국소부위에서는 신경 세포들이 조금씩 생성된다. 이 세포들의 활발한 성장에는 BDNF(뇌유래신경영양인자)라는 성분이 요구된다. 운동을 하면 뇌에는 BDNF가 증가한다. 다시 말해 뇌를 튼튼하게 만들어, 우울증뿐만 아니라 인지적 저하 등 여러 문제에 대항할 능력을 길러준다. 어떤 운동이 가장 이로울까? 쥐를 대상으로 어떠한 운동이 효과적으로 BDNF를 증가시키는지 실험했다. 인터벌, 고강도의 무산소, 적당한 강도의 유산소로 나누어 실험을 진행한 결과, 적당한 강도의 유산소가 BDNF 생성에 가장 이로운 것으로 밝혀졌다.

 정리하면, 운동은 뇌를 이롭게 바꾼다. 천연 항우울제의 역할을 하며,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엔도르핀 등을 맘껏 분출시킨다. 그리고 중독과 관련된 도파민계에 영향을 미치고, 의지력을 길러줘 상향 나선의 기회를 선물한다. 그리고 새로운 신경세포의 생성을 돕는 BDNF를 촉진해 뇌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3) 사회적 관계와 만남  

 본인은 내향적이라 혼자 있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 행복을 연구하는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는 다른 답을 도출했다. 내향적인 사람들도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더 높은 행복감을 느낀다. 혼자 치킨을 먹을 때 행복이 5라면, 같이 먹으면 7로 증가하는 식이다. 그리고 친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한 즐거움의 상승 폭은 외향적인 사람보다 내향적인 사람이 더 크게 측정된다. 내향적인 사람도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하다. 다만 첫 만남의 어색함과, 낯섬에 대한 스트레스 등등 예측되는 두려움을 과대평가하여 기회를 줄인다. 

 동물행동학에서도 사회적 동물의 관계와 만남을 강조한다. 노르베르트 작서는 처음에 동물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상황이 무엇인지 연구했다. 그런데 연구가 거듭될수록 다음 질문이 궁금해졌다.
“어떤 요인이 동물의 스트레스를 완화하는가?” 
 그가 발견한 것은 명료하다. 부담스러운 환경에 처하더라도 애정 관계로 맺어진 짝이 곁에 있으면, 호르몬에 의한 스트레스 반응이 실제로 낮아진다

 기니피그와 같은 사회적 동물들은 집단 내에서 낮은 위치에 있을 때보다, 집단 내의 서열이 불확실할 때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된다. 유명한 실험이 ‘빨간 에밀 실험’이다. 연구자는 기니피그 에밀을 여러 기니피그 집단에 번갈아 집어넣었다. 낯선 집단에 떨어진 에밀의 혈중 코르티솔 수치는 거의 80퍼센트까지 솟구쳤다. 집단을 바꿀 때마다 계속 같은 반응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유난히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바로 그 낯선 사육장에서 좋아하는 암컷을 만났을 때다. 놀랍게도 에밀의 코르티솔 수치는 그 전만큼 크게 오르지 않았다. 이러한 효과는 에밀뿐만 아니라 다른 수컷, 암컷 기니피그에게도 적용되었다. 좋은 관계를 형성한 다른 개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현저히 낮아져 도전적인 상황에서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영장류학자인 율리아 오스트너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동성 사이의 우정도 효과적인 완충 장치로 작용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추후 연구를 통해 한 가지 보편 원칙을 발견했다. 관계가 친밀해야 도움이 되며, 관계가 가까울수록 보다 효과적으로 스트레스를 보호해준다. 

 정리하자면, 사회적 동물은 친밀한 개체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 반응이 현저히 줄어든다. 이는 스트레스 상황을 견디게 해주며, 동성끼리도 유사한 반응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정도는 관계가 얼마나 깊은가와 관련이 있다. 내향적인 인간도 ‘혼자’보다는 ‘같이’가 더 행복하다. 

 

 정신 건강을 위해선 감정을 명확하게 인지해야한다. 규칙적이며 적당한 강도의 운동을 해야하며, 아무리 혼자가 좋아도 사람들을 자주 만나야한다. 많이 들었던 식상한 이야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제로 행하는 것이다. 이 실행을 돕는 한 가지 방법은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 기사가 행동을 위한 근거로 부디 충분했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

<유쾌한 운동의 뇌과학>, 마누엘라 마케도니아 (2020)

<이기적 감정>, 랜돌프 M. 네스, 더 퀘스트 (2020)

<동기와 정서의 이해>, Johnmarshall Reeve, 박학사 (2018)

<우울할 땐 뇌과학>, 앨릭스 코브, 심심 (2018)

<홀로서기 심리학>, 라라 E. 필딩, 메이븐 (2020)

<동물 안의 인간>, 노르베르트 작서, 문학사상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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