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기자
©박정민 기자

오는 5일 소파 방정환 선생과 색동회가 제정한 ‘어린이날’ 이 100주년을 맞는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비롯한 7개 기관과 함께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31일까지 ‘2022 어린이 문학주간’ 을 개최한다. 한국 아동문학의 탄생을 축하하고 앞으로의 지속적인 발전을 격려하기 위함이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한국의 아동문학이 발전해온 과정부터 오늘날 한국 동화의 동향 및 대표 작가들을 알아보고자 한다.

과거 한국의 아동문학

 아동문학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문학작품이다. 독자층이 대체로 13세까지의 어린이들이지만 청소년부터 어른들까지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기본적으로는 어린이들을 위해 쓰이는 글이다 보니 어린이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소재로 교훈적인 내용을 다룬다. 그림이 곁들여지는 것이 보통이고 읽기 쉬운 문장들로 구성된다. 처음부터 아동문학으로 쓰이지 않았더라도, 고대 그리스의 이솝 우화 같은 경우 현대에 와서 어린이들을 위한 책으로 재탄생 되기도 했다. 본격적인 아동문학은 17세기에 와서야 등장했다.

 한국의 경우, 근현대 이전에는 어린이를 위한 책이나 문학 작품이 만들어진 적은 없지만, 지역마다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전래 동화가 있었다. 소파 방정환에 의해 한국의 아동문학이 꽃피기 전, 그 배경에는 1908년 최남선이 창간한 청소년 잡지 <소년>이 있었다. 국내외의 과학, 사조, 역사 등을 소개하며 계몽 및 민족의식 고취의 목적성을 가졌다. 결국 1911년 일제의 탄압으로 폐간되었지만, 최남선은 <붉은 저고리>, <아이들 보이> 등의 어린이 잡지를 계속하여 창간했다. 특히 <아이들 보이>는 한글로 된 동화나 동요, 우화 등을 다루어 순수한 아동 잡지로서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한국 아동문학의 선구자 방정환이 창간한 잡지 <어린이>는 아동문학의 필요성을 일깨웠다. <어린이>는 계절에 맞는 삽화와 글, 어린이 독자들이 직접 투고한 동시나 웅변 글 등을 실으며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으로 엄격한 검열과 삭제, 심지어는 발행인인 방정환에 대한 수감 명령까지 각종 고난 속에 잡지 <어린이>는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린이의 인격을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방정환의 뜻은 오래도록 남았다. 특히 <어린이>는 동요, 동화, 동화극본이라는 장르로 구분하여 작품을 실어 아동문학의 장르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도 했다. 

 잡지를 창간한 최남선과 방정환 외에도, 일제 강점기 동안 한국의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한 작가들이 있다. 이태준 작가는 1930년대에 동화를 다수 집필하였지만, 광복 이후에는 북한으로 넘어가 그 이후의 경력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작품 중 1938년에 쓴 <엄마 마중>이라는 짧은 동화는 2004년에 와서 김동성 작가의 서정적인 그림을 더해 그림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등장인물의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는 짧은 글이지만, 김동성 작가 특유의 뛰어난 연출력으로 우리 정서를 살려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간절한 마음이 잘 드러나는 사랑스러운 그림책이 탄생했다. 

 또 한 명의 근현대 아동문학 대가인 이주홍 작가는 1930년대부터 어린이 잡지 <신소년>을 편집하고 동화, 동요, 소년시를 집필했다. 그는 강자와 약자가 함께 어우러져 잘 살 수 있는, 자신이 꿈꿨던 세상을 작품 속에 담았다. 특히 비정하고 삭막한 어른들의 세상 속에서 어린이들만의 동심으로 갈등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많이 다루었다. 그를 기리고자 만들어진 ‘이주홍 아동문학상’은 오늘날 한국 아동문학의 주요 상이기도 하다. 올해 제42회 이주홍문학상 아동문학 부문에는 아동문학가 이상교의 동시집 <수박수박수>가 선정됐다. 

 윤석중 작가는 1,000편 이상의 동요를 남겼고 그중 반 이상이 아직도 불리며 ‘한국 동요의 아버지’라고도 칭해진다. 1932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집인 <윤석중 동요집>을 비롯해 우리 정서를 여러 동요시에 담았다. 특히 우리 세대도 익숙할 <퐁당퐁당>, <나리나리 개나리>, <기찻길 옆>, <우산 셋이 나란히> 등은 지금까지도 널리 불리고 있다. 시인 백석은 어린이를 위해 산문보다는 시가 좋다고 생각해 동화시라는 형식을 만들었다. <개구리네 한솥밥> 등의 동화시를 잡지와 신문 등에 작품을 발표하며 어린이를 위한 시를 발전시켰다.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아동문학이 발전하기에는 더욱 열악한 상황이 되었다. 상업적인 소년 소설이나 만화가 범람했지만, 그럼에도 순수 아동문학의 맥을 잇는 강소천, 마해송, 이원수, 김요섭 등 몇몇 작가의 작품 활동이 있었다. 그러다 1970년대에 와서는 <아동문학사상>이나 <아동문학평론> 등 아동문학을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들이 발간되며 아동문학계가 체계화되었다. 또한 소천 아동문학상, 해송 동화상, 세종 아동문학상 등이 새롭게 제정되며 작가들이 대거 등단했다. 

 그리고 80년대로 들어서면서 그림책이 등장하고 아동문학의 양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세계아동의 해 1979년을 맞이하여 동화책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과 그에 따른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도 동화책 시장의 확장에 한몫했다. 또한, 1980년에 컬러 텔레비전이 상영되면서 인쇄물도 함께 급속도로 발전하며 그림책도 컬러로 출판되기 시작했다. 해외명작동화, 위인전, 전래동화집 등의 어린이 도서가 어문각, 동화출판공사, 웅진출판사에서 제작되었다. 게다가 대형서점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방문 판매 형태를 벗어나, 독자가 단행본 그림책을 직접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동화책 시장은

 누구나 한 번쯤 읽어 봤을 정도로 유명한 <구름빵>의 백희나 작가 외에도 <당근 유치원>의 안녕달 작가, <이파라파냐무나무>의 이지은 작가, <미움>의 조원희 작가 등 수많은 스타 작가들이 한국 그림책 시장에서 부상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출판사 응모전이나 사설 그림책 교육 기관을 통해 수많은 신인 작가들이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아동문학의 높은 수준에 비하면 아동문학 작가들의 상황은 여전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의 저자 최혜진은 “아주 최근부터는 성인 독자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그림책 작가가 생계유지를 위한 일을 병행한다”고 전했다. 한국의 그림책은 2010년대 중반부터 유명한 국제 아동문학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 주목받아왔지만, 국내에서는 아동문학이 문학이나 예술 분야로서 잘 다뤄지지 않을뿐더러 다른 분야에 비해 창작자에 대한 지원도 미흡한 탓이다.

 

그림책 짓는 작가들

 어린이들을 위한 책 중에는 그림책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보통의 동화책과 다르게 그림책은 그림이 글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된다. 그림과 글이 함께 책의 흐름을 이루는 것이다. 가끔은 글을 아예 배제하고 그림만으로 책이 구성되기도 한다. 그 덕에 오히려 연령 제한 없이 아이부터 어른까지 즐길 수 있는 예술작품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성인 독자들도 그림책을 찾기 시작했다. 그림책은 성인 정서에도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종합 예술 장르로 확장 중이다. 작가들은 어린이가 이해하기는 어려운 예술적 혹은 사회적 코드를 작품에 담는 등 더 이상 자신의 독자층을 어린이로 한정 짓지 않는다. 

 그림책은 나이뿐 아니라 언어 장벽을 넘어서도 쉽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한국 그림책은 실제로 각종 세계 대회 상을 받는 등 해외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에는 그림책 <여름이 온다>의 이수지 작가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이하 안데르센상)의 일러스트레이트 부문에서 수상했다. 안데르센상은 아동문학계의 노벨상 격으로 특정 작품이 아닌 작가가 창작한 모든 작품에 대해 시상한다. 한국인 작가가 안데르센상을 받은 것은 이 작가가 최초다.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는 이 작가에 대해 “아이의 현실과 환상 세계를 책의 물성을 토대로 꾸준히 탐구한 작가”라며 “인간과 동물 사이의 교감 등 보편적 주제를 통해 그림책이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이 작가는 <세바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해 자신에 대해 “그림의 힘으로 이끄는 이야기를 책이라는 그릇에 담고 짓고 독자들과 노는 사람”이라 소개했다. 그만큼 이 작가는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는 과정을 즐긴다고 한다. 이런 작업 방식은 이 작가가 생생한 감정을 독자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재작년에는 <구름빵>을 지은 백희나 작가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을 받기도 했다. 이 상은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쓴 스웨덴의 아동문학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기념해 만들어진 상으로, 작가의 전체적인 업적과 예술성, 인도주의적 가치를 평가한다. 2차원의 종이 인형으로 등장인물들을 만들고 빛과 그림자가 있는 3차원 배경에 등장인물들을 배치하여 촬영하는 방식은 백희나 작가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유명한 <구름빵>도 이 기법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이에 대해 심사의원 측은 “평면적인 종이와 입체적인 공간의 대조를 통해, 독자들을 저항할 수 없이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역동적이고 마술적인 세계를 창조한다”고 평했다.

 

 어린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희망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알지 못하는 세계를 보여주고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주는 동화는 그런 어린이들에게 세상을 안전하게 접할 수 있는 창이 되어준다. 어린이가 있는 한, 그리고 어린이들의 아름다운 성장을 응원하는 어른들이 있는 한 동화는 앞으로도 꾸준히 읽힐 것이다. 최근에는 어른들도 그림책을 찾기 시작했다. 때로는 말이 없는 위로가 더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많은 이들이 동화를 통해 경험과 위로를 얻어가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참고문헌 |

<세계의 어린이책과 작가들>, 호즈미 타모츠, 한림출판사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최해진,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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