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 『표백』

(주)교보문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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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내의 화자로 등장하는 ‘나’는 점점 굳어져 결국엔 경직되어버린 사회의 모습과 그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적인 반발 의식을 느끼는 청년이었다. 이윽고 그는, 과거 대학생 시절 본인이 만났던 인물 중 가장 핵심적 존재였던 ‘세연’이 시작한 ‘자살 선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세연은 ‘나’와 비슷하게 굳어지고 점점 비좁아져 탈출할 통로마저 사라져 가고 있는 이 사회에 반발심을 가지고, 경직된 사회를 효과적으로 뒤흔들 전혀 새로운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그녀는 ‘찰스 맨슨 패밀리’에 대해 이야기하며 연쇄 살인마저 사회에 대한 반발적 의견을 표출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어버린 상태이기에, 자신은 스스로를 죽임으로써 이 사회에 하나의 메시지를 던지겠다고 ‘나’를 제외한 인물들에게 전한다. 더불어, 그녀는 이 일종의 자살 선언을 함께하는 동지들에게 그들이 목표하던 바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를 거둔 순간에 자살 선언을 이행하길 종용한다. 이로써 세연은 그들이 사회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자살하는 것이 아닌, 자살 선언을 싣고 가는 메신저로 기능하게 만든다. 곧이어, 그녀는 자기 자신의 자살로써 자살 선언의 시작을 알린다.

 ‘나’는 세연의 자살 이후, 공무원이 되는 과정에서 현실의 피로와 어려움 속에 묻혀 대학 시절의 ‘나’가 가지고 있던 경직된 사회에 대한 폭력적 반발심과 저항 의식이 다소 무디어진 상태이다. 그러나, 주변인들의 자살로부터, 세연이 자신의 자살 선언을 통해 남긴 그녀의 잔재를 마주하며 ‘나’는 일종의 적개심을 느낀다. 이윽고 ‘나’는 세연이 제시한 자살 선언을 뒤집을 방식을 찾기 위해 과거의 ‘나’가 가지고 있던 반항적 의식을 일깨운다.

 <표백>은 2011년도 제16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작품으로, 장강명 작가의 등단 작품이다. 이전까지 기업에서 일하며 월급을 받는 회사원이었던 그는 <표백>에서 보여준 간결한 문체를 통한 속도감 있는 전개로 호평을 받으며 최근 문단의 단연 주목받는 신인으로 떠올랐다. 그는 <표백>을 통해 사회에 갓 나온 20대들이 느끼는, 이미 완성되어 굳어져 버린 사회 속에서의 무력감과 절망감을 ‘자살’이라는 하나의 문제 제기 방식으로 표현한다.

 마치 우리가 현재 청년 세대를 ‘N포 세대’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처럼, 작가는 <표백>에서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는 이름을 지금의 사회에 붙여주었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가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를 묘사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어째서 청년들이 자살 선언을 통해 사회를 탈출하거나 변혁하려고 시도하는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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