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 밀러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KAIST 도서관 사서 추천 도서

(주) 교보문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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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룰루 밀러가 어렸을 적 생화학자 아버지는 혼돈만이 유일한 지배자라고 말했다. 우주라는 큰 혼돈 속에서 한 인간은 무의미하므로,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으며 좋을대로 살면 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룰루에게 혼돈이란 견디기 힘든 고난이었고 무의미는 빠져나오기 힘든 암울이었다. 청소년기에 목격한 첫째 언니의 고통은 내면의 우울감이 되었고, 20대에 만난 연인은 빛 한 줄기처럼 다가왔다가 실연이 되어 돌아왔다.

 미국의 어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수많은 물고기를 발견하고 명명한 업적으로 분류학자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 무려 두 번이나 화재와 지진으로 소중한 표본을 잃는 경험을 한다. 그 순간마다 조던은 무너지기보단 자신의 목표를 더 확실하게 실현할 방법을 생각해내고 곧바로 실행한다. 룰루는 조던의 이런 모습에 매혹되어, 소중하고 정교한 뭔가를 쌓아 올렸다가 모든 것이 다 무너지는 걸 직접 목격한 사람이 어떻게 계속 나아갈 의지를 다시 찾는지 알아내고자 조던의 삶을 추적한다.

 저자 룰루 밀러는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을 수상한 과학 전문기자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논픽션 데뷔작으로, 다채로운 문체와 시점이 인상적이다. 회고와 묘사, 사실과 주장이 모두 어우러져 하나의 흡입력 있는 에세이가 탄생했다. 조던의 인생을 통해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시에 사회적인 시각도 함께 쌓아낸다. 과학 기자답게 조던의 발자취를 집요하게 따라 분석하는 과정도 책의 매력 포인트이다. 그녀가 접한 수많은 자료와 사람들이 작품 속에서 생동한다.

 조던의 내면에 대한 추적 끝에 룰루는 결국 조던 안에 해답은 없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어류만을 좇아온 조던의 실패에서 저자는 되레 물고기를 포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깨달음에 다다른다. 확실성이 아니라,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는 회의감이 우리를 진보하게 한다는 것이다.

  물 속에 사는 수많은 생명들의 미묘한 차이를 뭉뚱그려 어류라 표현하는 것은 편하고 직관적이지만 지극히 인간중심적이다. 이 책은 편의를 위해 그어버린 선이 얼마나 우리의 시야를 편협하게 만드는지, 때로는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지적한다. 그러므로 편리한 직관을 버리고, 질서가 아닌 다양성을 바라보아야 비로소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는 잡초인 민들레가 다른 누군가가 볼 땐 약초가 되듯,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관점과 복잡성이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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