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보다 뜨겁게 바람보다 서늘하게

 <불보다 뜨겁게 바람보다 서늘하게>는 대전, 충청 기반에서 활동하는 14명의 공예작가가 참여한 기획 전시이다. 지난해 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공예 전시 <시간의 온기>와 유사하나, 도자기 외 재료들을 기반으로 한 작품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는 것이 이번 전시만의 특징이다. 이번 전시는 공예의 예술 가치에 집중하여 현대 공예는 ‘인간의 삶에서 무엇을, 어떻게 이롭게 하는가’를 주제로 펼쳐졌다. 전시는 <섹션 1 무엇이 손을 사유하게 하는가>와 <섹션 2 손은 무엇을 사유하는가>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는 오직 ‘현대 공예’라는 이름으로 묶여 진행되었기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통일성을 느끼긴 어려웠지만 다채롭고 신선한 표현기법들과 현대 공예의 양상을 알아보기에는 충분했다. <섹션 1 무엇이 손을 사유하게 하는가>가 진행되는 제1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섬유와 충전재를 사용하여 의자를 만드는 인영혜 작가의 <울퉁불퉁>이 보인다. 작품의 제목처럼 울퉁불퉁한, 까만 커다란 의자와 등받이 없는 역시 울퉁불퉁하고 까만 의자가 놓여 있다. 인영혜 작가는 누군가 앉을 때마다 형태가 바뀌는 의자에 대해, 타인과 마주할 때 실제와 달리 표현되고 무시되는 감정을 내포했다고 설명한다. 의자를 비롯한 작가의 작업물들은 작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도구이자 타인의 위로를 유도하는 예술적 산물이다.

 우스꽝스럽고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찍은 자신의 사진을 광목천에 인화하고, 그 위에 공업용 재봉틀로 박음질한 윤지선 작가의 작품도 3점 걸려 있었다. <Rag face>는 직역하면 누더기가 되어버린 얼굴이란 뜻이다. 작가는 재봉틀 바늘이 더는 들어가지 않을 때까지 박음질하며 변형된 자신의 초상을 통해 고정된 자아의 개념을 반문하고 있다. 윤지선 작가의 다른 전시에서는 작품을 벽이 아니라 공중에 전시함으로써 양면의 결과물을 볼 수 있게 하기도 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단면만 관람할 수 있다.

윤지선 - 「Rag Face」 ©김서경 기자
윤지선 - 「Rag Face」 ©김서경 기자

 이 밖에도 제1 전시관에는 오래되어 버려진 고장 난 사물의 사라진 부분을 등나무로 엮어 채워넣음으로써 소외되는 것들에 대한 위로를 담는 조혜진 작가, 유리에 옻칠을 더해 현대적 재해석을 시도하는 정은진 작가, 뗀석기 등 원시 조형의 제작원리를 따서 작업하는 정해조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조혜진 작가의 전시 옆에는 이준호 시인의 ‘더러는 잊힐지라도’라는 시가 함께 걸려있어 작가의 의도를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외에도 3D 프린팅과 옻칠 기법을 이용, 자연에서 찾은 공격적 이미지를 모티브로 방어적 형태를 표현하는 윤상희 작가의 전시, 전시관 사이 로비에 위치한 김희라 작가의 손바느질로 제작된 설치 전시를 볼 수 있다.


 <섹션 2 손은 무엇을 사유하는가>가 펼쳐지는 제2 전시관에는 수백 장의 닥지와 일상 사물을 이용한 자국으로 작품을 만드는 구경숙 작가, 전통적인 도자예술의 개념이었던 쓰임에서 벗어난 도자의 영역을 찾고자 노력하는 임미강 작가, 옻칠을 통해 우주의 질서와 시간성에 관한 고뇌를 담는 최영근 작가의 전시들이 들어서 있다. 또한 나전과 난각은 최소화하되 칠 면에는 점과 선을, 음각 부분에는 여러 종류의 고운 분을 침전시켜 자연물을 침전 기법으로 재해석하는 유은옥 작가, 코일링 기법으로 유기적인 순환구조를 통해 시간의 연속성과 영속성을 형상화하는 최문주 작가의 전시도 볼 수 있다.

 제2 전시관의 가운데에는 송계영 작가의 <환영의 정원>이 자리 잡고 있다. 환영의 정원은 조선 중기 대표 정원이자 국가 명승 40호인 소쇄원을 새롭게 해석하여 현재와 과거의 소쇄원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만들어낸 작품이다. 작품 안을 거닐면 작품의 벽면이 식물의 형상으로 구멍이 뚫려있어 빛이 여러 줄기로 들어오게 되는데, 관객들은 이 연출을 통해 환영적 공간에 대해 느낄 수 있다. 송계영 작가는 유기적 섬유질을 재료로 사용하여 자연과 생명의 가치와 의미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또 <환영의 정원>을 지나서 나오면 바로 오치규 작가의 <시간꽃> 작품을 볼 수 있어 마치 과거의 어느 정원으로 온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다른 두 작가의 작품이지만 한 전시회에 전시되면서 이루어지는 조화이다. 오치규 작가의 <코카콜라 병에서 사는 식물 12>은 생명이란 이름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위트있게 그린다.

 제2 전시관과 제3 전시관 사이에서는 ‘무엇이 손을 사유하게 하는가’, ‘손은 무엇을 사유하는가’에 관해 묻는 투명 팻말이 여러 개 세워져 있다. 마치 관람객에게 전시의 주제가 되는 두 가지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손이란 일반적인 의미로 신체의 일부분을 뜻하지만 공예작가의 손은 그들의 작업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작품에 비로소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을 하는 주체이자 그 자체이다.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은 다른 언론매체에서 현대 공예에 관해 “기술적, 실용적 가치를 넘어 예술 언어로 인간과 삶에 대한 애정을 전하는 공감 미술의 실현이다.”라고 전한 바 있다. 전시는 공예작가들의 손으로부터 나온 예술 작품들의 형태로 작가들이 담아낸 가치를 관람객들이 같이 느끼게끔 한다.

​송계영 작가의 「환영의 정원」에서 바라보는 오치규 작가의 「시간꽃」 ©김서경 기자
​송계영 작가의 「환영의 정원」에서 바라보는 오치규 작가의 「시간꽃」 ©김서경 기자

 

 시립미술관은 “전시의 제목인 ‘불보다 뜨겁게, 바람보다 서늘하게’란 공예 작업의 가장 원천적 재료를 의미하는 동시에 예술가들이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그리고 저변에 깔린 삶에 대한 마음의 온도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 자주 보이는 옻칠기법만 보았을 때도, 옻칠하고 건식 건조를 했다가 또다시 옻칠하고 고온 경화하는 과정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공예 자체에서 전시 제목의 직관적인 뜻을 알아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시를 보며 다소 고독할지라도 불과 바람과 같은 장애물에도 끄떡없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는 예술가의 깊은 예술 세계를 느껴볼 수 있다.

 

장소 | 대전시립미술관

기간 | 2022.03.29 ~ 2022.05.15

요금 | 성인 500원 / 어린이, 청소년 300원

시간 | 10:00 ~ 19:00 (매월 마지막 수요일 20:00까지)

문의 | 042)270-7312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