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기자
©박정민 기자

 우리의 수천 년 식생활 역사에서 곡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채소였다. 굶주림을 의미하는 ‘기근’ 에서 기(飢)는 곡식이 여물지 않아 생기는 굶주림, 근(饉)은 채소가 자라지 않아 생기는 굶주림을 뜻한다. 즉, 전통적인 음식문화에서 채소가 곡식만큼 큰 의미를 가졌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사는 곳 근처에 채소밭을 만들고 직접 가꾸어 일상의 반찬으로 삼았다. 채소는 농가뿐 아니라 청빈한 사대부의 생계수단이기도 했고 풍류의 대상이었으며 여가의 일부를 담당하기도 했다. 봄나물의 향기로 식탁이 풍요로워지는 요즘, 한국인에게 채소가 가지는 의미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역사 속 나물

 쑥과 마늘은 우리 민족의 시작이 되는 채소다.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군신화 속 마늘은 우리가 익히 아는 현재의 마늘이 아닌 달래나 명이나물을 의미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달래와 명이나물은 마늘 냄새가 나는 채소들로, 영약(신령스러운 약)을 상징한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는 마늘과 쑥의 강한 냄새가 귀신이나 액을 쫓기 때문에 나쁜 것을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어두운 밤에 길을 나서야 할 때 마늘을 먹었는데, 밤길의 마늘 트림이 귀신과 호랑이를 겁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쑥 역시 마늘처럼 상징적인 채소로, 우리 조상은 단옷날 쑥으로 사람이나 호랑이 형상을 만들어 걸어 놓기도 하고 이사하면 쑥을 태움으로써 나쁜 기운을 쫓는 데 썼다. 이처럼 우리 역사는 첫시작부터 채소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통일신라부터는 문헌에 등장하는 채소가 다양해진다.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상추, 무, 마 그리고 미나리와 오이가 부식의 재료로 문헌에 등장한다. 미나리는 통일신라 이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 최치원이 쓴 글 <인삼삼근 천마일근>이다. 이 글에서 인삼과 천마를 노인의 미나리에 빗댄 것을 보아 미나리 역시 귀중한 채소로 취급받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는 불교가 국교로 자리잡아 우리나라의 채식 전통이 기틀을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지하고 어육을 멀리하며 소식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족한 영양소를 채소에서 보충하기 위해 더 다양한 채소류를 섭취하기 시작했다. 채식 문화가 발달되기 시작해 완전히 자리잡은 조선시대에는 나물 반찬이 밥에 곁들여지는 부식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세종 때 각 지역의 특산물을 기록한 <신찬팔도지리지>와 성종 때 쓰여진 <동국여지승람>이 조선 8도의 지리와 인문을 폭넓게 담으며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의 식품사전으로서 여겨지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상품 작물의 재배가 체계화되고 일반화되어 식생활에 영향을 끼쳤고, 18세기 이후 도시가 발달하며 도시 주민들에게 식료품을 공급하기 위해 근교의 채소 재배가 성행했다. 조선 초기부터 채소가 거래 대상이긴 했지만, 물물교환 수준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야 채소 시장이 상업화된 것이다. 채소가 상업의 영역에 들어서면서 부식의 종류는 더욱 다양해지고 새로운 양념류가 개발되기도 하며 식생활은 점차 풍요로워졌다.

 

학자의 나물 사랑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의외로 음식에 많은 관심을 두고 관련된 저서나 글, 혹은 조리서를 남기기도 했다. 음식이 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생각했거나 제사나 의례에 필수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식 자체를 사랑하는 미식가로 알려진 유학자들도 많았으며 일부는 스스로 텃밭을 일구어 채소를 기르기도 했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는 우리나라 성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퇴계 이황은 이(理)를 중시한 이기원론을 주창했고 율곡 이이는 기(氣)를 조금 더 강조한 기발이승일도설을 제시했다. 이를 단순화해 율곡 이이가 자연을 더 중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 차이는 두 학자의 음식 취향에서도 드러난다.

 퇴계 이황이 저술한 건강서 <활인심방>에 따르면, 그는 개고기로 만든 무술주나 녹각죽(사슴 뿔을 넣고 끓인 죽), 유죽(우유를 넣고 끓인 죽) 등 동물성 식재료를 선호했다. 반면 율곡 선생의 음식 선호에서는 그의 자연론적 철학체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나물을 캐러 산과 들로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율곡 이이의 작품으로 알려진 <전원사시가> 중 ‘봄편’에서는 도라지, 고사리, 고비, 마름, 취 같은 나물에 대해 노래하며 채소와 자연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격몽요결>에서는 탐식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평생 소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고, 신분이 높은 자들의 탐식이 백성들의 고통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 백성들을 힘들게 하는 진상 제도를 없애라는 상소문을 올리기도 했다. 이와 같은 율곡 이이의 음식관은 조선 유학자의 음식관을 대표한다. 자신을 절제하고 백성을 보살피고자 했던 유학자에게 나물보다 어울리는 채소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소설 <홍길동전>의 작가로 유명한 허균의 또다른 별명은 조선시대의 음식 칼럼니스트다. 허균이 어릴 때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음식들이 그의 집에 선물로 들어왔다. 임진왜란 때는 강릉에 위치한 외가로 피난을 가서 그곳의 음식에 익숙해졌고 과거에 급제한 이후에는 여러 고을에서 벼슬살이를 했기 때문에 다양한 식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광해군 때 당파싸움에 휩쓸려 떠난 귀양에서 거친 음식만 먹게 되자, 전국의 맛있는 음식을 그리워하며 <도문대작>이라는 글을 남겼다. <도문대작>은 “도축장의 문을 바라보면서 크게 씹는 흉내나 내본다”라는 의미를 가진 글로, 134종의 맛있는 음식 이름을 나열하고 있다.

 각종 별미를 담은 <도문대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방풍죽’에 대한 소개다. 허균은 강릉사람들이 음력 2월이면 해가 뜨기 전에 이슬을 맞은 방풍 싹을 따서 고운 쌀가루에 넣어 방풍죽을 끓인다고 했다. 허균의 말에 따르면 “방풍의 향긋한 향기가 입에 가득하여 3일 동안이나 간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 나물죽은 본래 먹을 것이 없을 때 기아를 면하기 위해 먹은 음식이었다. 전국의 산해진미를 맛본 허균이었지만, 죽에 넣은 나물에서 향긋함과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느낀 것이다. 허균의 이러한 글은 나물죽이 풍류와 구황을 겸한 우리 조상의 음식이었음을 드러낸다.

 

예술 작품 속 나물 이야기

 우리의 옛 미술작품에는 정물화라고 부를 수 있는 그림이 많지 않다. 그릇에 담긴 과일이나 채소를 정지된 이미지로 표현한 서양의 정물화와 다르게 우리 그림은 채소와 과일을 생명을 가진 존재로 역동성 있게 표현하곤 했기 때문이다. 풀과 곤충이 정답게 함께하는 자연을 담아낸 그림을 뜻하는 ‘초충도’가 이에 해당된다. 그중 초충도 8점으로 이루어진 신사임당의 <신사임당초충도병>은 간결한 구도와 섬세한 표현으로 한국 문화와 정서를 잘 표현해냈다고 평가받는다. 이처럼 같은 과일이나 채소로 그린 그림이라고 해도, 각기 다른 마음과 문화가 담겨있다.

 긴 겨울을 벗어나 봄이 되면 봄나물을 캐는 것이 옛 조상의 중요한 일상이었다. 때문에 여인이 봄나물을 캐는 풍경을 담아낸 그림은 풍속화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평생 학문과 예술에 전념했다고 알려진 조선 후기의 화가 공재 윤두서는 봄날 시골 산비탈에서 나물을 캐는 두 아낙네를 담은 <채애도>를 남겼다. 윤두서뿐만 아니라 그의 손자 윤용 역시 나물 캐는 여인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윤용의 <나물캐는 여인>은 18세기를 대표하는 풍속화 중 하나로, 봄기운이 느껴지는 들녘에 망태기를 끼고 호미를 든 채 먼 들판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담겨있다. 윤두서의 <채애도>와 달리, 자연 배경 없이 여인의 뒷모습만 그림으로써 신비함과 강인함을 자아낸다. 이 밖에도 나물 캐는 그림이 다수 남아있는데, 나물 캐기가 조선시대 사람들의 중요한 삶의 일부였음을 깨달을 수 있다.

윤두서 -
윤두서 -
윤용 -
윤용 -

 육식으로 인한 환경 문제가 심각해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채소가 중요한 식재료로 부각되고 조리법이 중요해졌다. 다양한 역사자료와 작품을 통해 우리나라의 전통 먹거리 체계에서 채소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식습관은 어떤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선조는 생존을 위해 채소를 먹었고, 현대인은 건강을 위해 채소를 먹는다. 다양한 채소를 가장 매력적으로 조리해 먹은 우리 민족의 음식문화를 돌이켜보며 채소와 나물 향으로 가득한 향긋한 봄을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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