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 많은 카이스트 남학생들에게 입대라는 것은 다소 생소한 주제였다. 필자가 알기에는 적어도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남학생들은 원한다면 대부분 대학원 진학 후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통해 현역 입대가 아닌 대체 복무로 자연스럽게 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전문연구요원 TO 부족 문제로 대학원 진학 계획이 있음에도 현역 입대를 선택하는 남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필자 또한 이런 학생 중 하나였으며, 달갑지는 않게 선택한 군 생활에서 예상외의 교훈을 얻게 되었다. 

 글의 요점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밝히자면, 필자는 카투사로 복무했다. 이 한마디로 글의 진정성이 감소할지도 모르겠으나, 어떤 환경에서도 군대라는 곳은 어려움이 존재하는 법이다. 카투사의 과반이 그렇듯 필자 또한 행정병으로 근무했다. 업무 인수인계를 받을 때 필자의 선임은 모든 일에 대해 자세한 부분까지는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필자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인사과의 카투사가 맡아야 하는 업무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카투사의 특성상 영어 실력의 차이에 따라 본인이 소화할 수 있는 업무의 양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영어 실력이 좋은 편에 속했고, 일이 쌓여 있는 것을 보면 미룰 수 없는 성격까지 겹쳐 필자의 업무량은 서서히 늘어 같은 부서 미군 동료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기에 이르렀다.

  처음 6개월 정도는 밀린 일을 직접 마무리하면서 업무 처리가 시급한 미군들을 돕고, 그들에게서 인정을 받으며 느끼는 보람 덕분에 위의 상태를 지속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무색무취하게 조용히 묻혀가다 군 생활을 마치는 카투사들과는 달리 많은 미군 동료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며 중대 일등상사와 중대장에게도 인정받는 성실한 카투사로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단점 또한 있었다. 필자보다 훨씬 많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일은 오히려 대충 하는 부서 미군 동료들에 대한 불만감이 축적되고 있었고, 필요 이상으로 업무에 몰입하면서 일과 외 시간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쓰고 있지 못했다. 카투사의 특성 상 퇴근 후에는 업무에 관하여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 하루는 밤 9시 가까이 되어 미군이 모르는 것이 있다며 나에게 전화를 걸어 질문하기도 했다. 이렇듯 득보다 실이 많아져 버린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게 되자 필자는 꼭 필요한 것부터 신경 쓰고, 나머지 일들에 대해서는 너무 일찍부터 해결하지 않는 방향으로 업무 자세를 잡아보기로 했다. 쉽게 말해 적당히 하자는 접근이었다. 원래 좋은 평판을 쌓아놓은 것이 도움됐는지, 이전보다는 일을 느리게 해결해도 이의 제기를 받지도 않았으며 딱히 부서 운영에 차질이 발생하지도 않았다. 군대에서 이런 경험을 겪음으로써 필자는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주어진 일에 성실히 임하는 것은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어 타인의 인정을 받기 마련이지만, 일종의 “워라밸”을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다. 복무는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필수이지만, 어떻게 임하느냐에 따라 무엇을 얻어가는지는 달라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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