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준 사회부 부장
김민준 사회부 부장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누구나 각자 한정된 시간, 체력, 마음 등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자신만의 우선순위와 기준에 따라 선택하기를 강제 당하기 마련이다. 누구나 항상 옳은 선택을 할 수 없기에 만약? 이라는 질문과 함께 과거 선택의 순간을 후회하기도 하고, 이를 발판 삼아 다음 선택에 보다 나은 결정을 내리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나는 선택을 후회하는 일이 정말 싫다. 언제부터였는지,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아마 당시에는 있었을지도 모르나- 이제 상관이 없어졌다. 싫은 데에 굳이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보다 성장한 나로서 해당 시점에서의 선택을 아쉬워할 수는 있겠으나,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바뀔 선택이었다면 충분히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누군가 물어오면 이렇게 답하곤 한다. 

 후회를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선택지들 중에서 당시의 상황에서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나는 나만의 policy를 따르고자 노력한다. 예컨데, 사람의 priority가 활동의 priority보다 우선시된다든지, 내가 싫어하는 일을 싫다고 하려면 나부터 하지 않고 해야 된다던지. 이런 기준을 항상 지키는 나는 아니지만, 대개 체력적인 이유, 혹은 보다 우선시되는 policy에 의한 결정이기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장 경계해야 하는 일은 아무래도 내 잣대로 다른 사람의 선택을 재단하는 것이다. 내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일은 폭력이라며 지양해왔으나, 다른 사람의 선택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의식적으로 내 policy를 적용하기 마련이다.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에 멋대로 이유와 당위성을 부여하고, 혹여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왜곡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들지 않는다. 최근, 나와 기준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해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다. 사실 아직도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후회되는 것은 내 기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임을, 감정적으로 대응하여 강요했기 때문이다. 

 모든 선택이 이해될 수는 없다. 내 선택조차 비합리적일 때가 있을진대, 네 선택을 어찌 논하랴. 나로 남을 옭아매는 꼰대가 아닌, 건강한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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