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기자
©박정민 기자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에 관한 영화인 <이미테이션 게임>을 본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천재 수학자 앨런은 독일군이 '에니그마’로 만든 암호를 해독해냈다. 후에 그가 만들어낸 암호 해독 기계는 현대 컴퓨터의 모델이 된다. 이렇듯 전쟁은 인간의 문명에 뜻밖의 선물 혹은 비극을 안겨줄 때가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컴퓨터, 인터넷을 살펴보며 전쟁과 인간의 과학기술 발전의 역사를 보고자 한다. 

 적의 군대 이동이나 작전 계획 등을 알아내는 첩보전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중요한 군사 전략이다. 첩보전이 절정에 달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인데, 당시 독일 해군은 전기 기술자인 아르투르 슈르비우스가 1920년에 개발한 암호 기계인 에니그마를 이용해 유럽 각지에 있던 아군에게 암호를 보내고 있었다. 

 

독일의 암호기, 에니그마
 에니그마는 회전자로 작동하는 암호 기계의 한 종류로, 그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로 '수수께끼'를 뜻하는 ‘아이니그마’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에니그마 암호문을 처음 입수한 영국군 첩보부는 충격을 받았다. 암호문이 너무 복잡하고 난해해서 해독하려면 족히 2년은 걸리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1939년 9월 4일부터 영국 정부는 에니그마에서 발송되는 독일군의 암호를 풀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영국 본토만이 아니라 캐나다와 인도, 이집트 등 영국 식민지에서도 수학과 전기 공학에 능한 과학자들이 영국 정부의 요청을 받고 런던 외곽의 비밀 연구소로 모여들었다. 

 에니그마의 원리를 좀 더 자세히 살며보자면, 26개의 알파벳이 새겨진 회전자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회전자 3개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회전자의 초기 설정은 설정자가 어떻게 회전자를 끼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키보드의 키를 하나씩 누를 때마다 가장 오른쪽의 회전자가 하나씩 돈다. 그렇게 오른쪽 회전자가 한 바퀴를 다 돌면, 가운데 회전자가 하나씩 돈다. 또다시 가운데 회전자가 한 바퀴 다 돌면, 맨 왼쪽 회전자가 마지막으로 하나씩 돌게 된다. 

 예를 들어, 키보드에 't'를 눌렀다고 가정해보자. 이 알파벳 't'는 알파벳을 선으로 연결한 플러그 보드에 의해 't'에 대응되는 알파벳으로 변형된다.  만약 't'와 'a'가 플러그 보드에 의해 연결되었다면, 'a'로 변형되어 맨 오른쪽 회전자의 'a'를 시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단 일러스트 참고) 그 뒤, 윗 문단의 설명처럼 회전자가 한 톱니바퀴씩 돌아가면서 'a'가 'z'로 바뀐 뒤, 최종적으로 'y'로 바뀌게 된다. 그 뒤, 마지막으로 반사체(reflector)를 통해 'y'를 임의의 글자로 교환시킨 뒤, 또 다시 회전자를 이용해 위의 과정을 반복하여(반대 과정이므로 왼쪽 회전자부터 시작한다) 최종적으로 나오는 알파벳의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과정이다. 즉, 에니그마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전기회로를 구성하여 작동한다. 

에니그마 원리 중 회전자 설정에 대한 모식도 | 26개의 알파벳이 새겨진 회전자 3개를 어떠한 위치로 설정하느냐가 중요하다. 회전자의 초기값 설정은 그림과 같이 오른쪽 회전자부터 시작을 'a-z-y'으로 설정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에니그마 원리 중 회전자 설정에 대한 모식도 | 26개의 알파벳이 새겨진 회전자 3개를 어떠한 위치로 설정하느냐가 중요하다. 회전자의 초기값 설정은 그림과 같이 오른쪽 회전자부터 시작을 'a-z-y'으로 설정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독일군은 에니그마를 사용하여 매일 100개도 넘는 메시지를 보냈고, 매일 자정에 이니그마의 회전자 설정을 바꾸었다. 독일은 매달 날짜별로 사용해야 하는 회전자의 상태가 적힌 책을 만들어 군대에 배포하였다. 에니그마는 회전자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해독이 어렵고 회전자의 설정 또한 매번 바뀌므로 해독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영국군은 어떻게 에니그마 해독의 아이디어를 얻었을까?

 

에니그마를 역추적한 튜링의 봄브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은 궁금증을 영국군은 독일군의 암호문에 반복되는 ‘단어’가 있다는 것에 주목하여 에니그마의 원리를 이용해 원문을 역추적하였다. 예를 들어 독일군에게서 가로챈 암호 첫 문장에 ‘ABCD EFGHIJK’라는 말이 반복된다고 하면, 이 구절을 뜻하는 단어를 예측하여 정했다. 그리고 예측한 단어를 입력했을 때 ‘ABCD EFGHIJK’가 나오도록 기계를 설정한다. 에니그마는 알파벳을 순서대로 입력한 톱니바퀴 여러 개를 맞물려 돌아가게 한 정치이기에 첫 번째 문장을 만든 설정을 알면 다른 문장을 해독하기 쉬워진다. 이렇게 특정 반복되는 문구를 이용하여 적절한 설정을 찾아낸 뒤에 기계가 자동으로 돌아가면서 26개의 알파벳을 짝지어 보고, 해석했을 때 말이 되는 경우를 찾는다. 이러한 원리의 암호 해독기가 바로 봄브이다. 이러한 봄브는 한 시간에 암호 5,858개를 해독했으며, 이 기계 덕에 영국군은 독일군의 암호 체계를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튜링이 개발한 봄브로 인해 독일군은 계속해서 패배하게 되었고 결국 독일군은 암호 체계를 로렌츠 암호로 새롭게 바꾼다. 

 

독일군의 로렌츠 암호를 해독한 암호 해독기 콜로서스
 1941년 12월부터 독일군이 기존의 암호문을 폐기하고 새로운 암호 체계인 로렌츠 암호를 사용하자, 봄브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다급해진 영국 첩보부는 새로운 해독기 개발에 압력을 가하고 마침내 1943년 12월에 영국의 암호 해독가들은 최첨단 암호 해독기를 개발하였다. 

 봄브가 로렌츠 암호를 해독할 만큼 빠르고 정교하게 계산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낸 영국군의 수학자들은 잘 짜인 논리적 순서에 따라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계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 기계가 바로 ‘거인’이라는 뜻의 암호해독기 ‘콜로서스’이다. 콜로서스는 구멍 뚫린 종이테이프 형태로 암호를 입력하면, 빛을 쏘아서 순식간에 입력된 정보를 받아들인다. 그런 뒤 입력된 암호 알파벳을 하나하나 검사하는데, 이때 미리 저장해 둔 방대한 암호 정보를 이용한다. 초당 5,000단어라는 빠른 속도로 철자를 비교하면서 암호를 풀어낼 수 있었던 콜로서스는 결국 로렌츠 암호를 풀어내는 데 성공한다. 이 해독기는 진공관 1,500개로 이루어졌는데, 역시 진공관을 사용한 미국의 에니악보다 3년 앞선 것이었다. 1944년 2월에 개발된 콜로서스 2호는 진공관 2,400개로 이루어졌으며 1호기보다 연산 속도가 5배나 빨랐다. 

 컴퓨터 연구가들 사이에서는 콜로서스를 컴퓨터 범주에 넣어야 할지 말지를 놓고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다. 이 논의에서 중요한 점은 콜로서스와 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의 동작 원리가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에서 많은 연구가가 콜로서스가 에니악보다 먼저 출현한 현대 컴퓨터의 시초라고 주장한다. 
인터넷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인터넷은 우리에게 보편화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인터넷은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업이나 유럽의 컴퓨터 회사일까?

군사용 네트워크 시스템인 아르파넷
 인터넷은 미국 국방부가 만든 네트워크 시스템인 아르파넷에서 비롯되었다. 러시아에서 인공위성 발사가 성공하자, 1969년에 미국 국방부 산하 기관인 고등연구계획국은 캘리포니아 대학과 함께 군사용 컴퓨터 네트워크를 만드는 연구에 착수했다. 이 연구를 통해 미국은 국방을 보호하는 동시에 핵전쟁을 비롯한 중대한 전쟁이 발생할 경우에도 컴퓨터들이 서로 작동할 수 있게 하는 효과적인 방안을 개발하고자 했다. 즉 여러 컴퓨터 통신망 가운데 하나가 적의 공격으로 파괴되더라도 전체 통신 시스템에서 안정적으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통신 체제의 구축이 시급한 문제로 부각되었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터넷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아르파넷이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초창기 아르파넷은 4미터 길이의 케이블선으로 컴퓨터 두 대를 연결해 놓은 후 한쪽 커퓨터에서 A나 B 같은 글자를 쓰면 다른 쪽 컴퓨터에서 그대로 받아서 쓰는 식으로 정보를 교환했다. 현대 인터넷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매우 간단하고 조악한 구조였다. 이해 10월 29일, 캘리포니아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 연구소가 케이블선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는 데 성공한다. 아르파넷은 점점 통신 가능한 거리를 늘려 갔고, 1970년에는 서부인 캘리포니아에서 동부인 매사추세츠와도 통신이 가능해졌다. 


아르파넷을 토대로 한 새로운 시스템들의 등장과 포털사이트 시대
 1971년,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레이 톰린슨이 아르파넷을 토대로 하는 컴퓨터로 보내는 전자우편을 개발하였다. 1973년에는 아르파넷의 케이블선이 미국을 넘어 바다 건너 영국에까지 이어져, 두 나라는 컴퓨터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었다. 1974년에는 네트워크 전송 프로토콜인 TCP/IP가 등장했고, 이로 인해 컴퓨터 두 대만이 아닌 수많은 컴퓨터가 한꺼번에 아르파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1983년, 미국 국방부는 TCP/IP를 군사용이 아닌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또한, 83년도에는 지금처럼 인터넷 주소에 닷컴(.Com)이 붙는 도메인 제도가 고안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90년에는 드디어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월드와이드웹(www) 시스템이 등장했으며, 4년 후에는 인터넷 접속 웹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가 선을 보였다. 그러나 넷스케이프는 경쟁사인 마이크로소프트가 1996년부터 윈도 운영체제에 자사의 인터넷 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를 끼워 팔면서 큰 타격을 입는다. 또한, 1998년에는 미국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인터넷 검색엔진 회사인 구글을 만들어 세계 인터넷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PC 통신에서 포털사이트 시대가 열린 현대의 인터넷 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흔하게 알고 쓰고 있는 컴퓨터와 인터넷은 모두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콜로서스는 세계 2차대전이라는 큰 역사의 굴레 속에서 30년 동안 정체가 비밀에 부쳐졌고, 아르파넷은 러시아와의 냉전과 핵전쟁을 대비하기 위한 연구의 산물이었다. 전쟁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인류의 찬란한 문명을 파괴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은 살아날 길을 모색하기 위해 또 다른 발전을 이룩해낸다. 이번 기사를 통해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든 발명품들의 이면을 살펴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 

 

참고문헌 | <전쟁이 발명한 과학기술의 역사>, 도현신, 시대의 창 (2021) / <암호 이야기>, 최영준 기자, 수학동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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