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박찬욱 감독이 애플과 협업해 제작한 단편 영화 <일장춘몽>이 공개되었다. 하나의 관을 차지하기 위해 두 영혼이 싸움을 벌이는 무협 로맨스 영화다. 처음으로 사극을 도전한 박찬욱 감독은 밴드 ‘이날치’의 음악을 통해 판소리의 형식을 영화에 적용해 한국적 색채로 화면을 가득 채웠다.

 단편 영화라는 형식이 익숙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생각보다 많은 단편 영화를 접해왔다. 디즈니, 픽사 등의 장편 애니메이션 앞에 삽입되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시작으로 학교에서 짧은 시간 내에 영화라는 매체를 소개하기 위해 보여준 단편 영화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을 것이다. 숏폼(Short-form) 콘텐츠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이후에는 자극적인 제목을 내걸고 단편 영화의 스토리를 설명하는 영상을 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단편 영화를 말해보라고 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편 영화를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서 인지하지 않고, 영화 전에 상영되는 광고나 숏폼 콘텐츠와 같은 선상에 두기 때문이다.

 

 단편 영화와 장편 영화를 나누는 기준은 상영 시간으로, 단편 영화는 40분 안팎의 상영 시간을 가진다. 짧은 상영 시간 때문에 단편 영화를 장편 영화보다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영화의 길이는 영화의 완성도를 결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짧은 시간에 함축적으로 메시지를 표현하기 때문에 작은 영화로 큰 울림을 전달하곤 한다. 상업적인 장편 영화와 달리 시스템의 제한도 적고 감독의 자유도도 높아서 감독이 원하는 주제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감독에게 단편 영화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대부분의 감독은 데뷔작부터 장편으로 시작하지 않고, 단편 영화로 필모그래피를 쌓은 후 장편 영화를 만들게 된다. 소위 ‘스타 감독’으로 알려진 봉준호, 박찬욱, 나홍진 감독 모두 단편 영화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특정 감독의 팬이라면 그 감독이 초기에 제작한 단편 영화를 통해 풋풋하고 열정적인 첫 시작을 느낌으로써 그 감독의 작품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단편 영화는 장편 영화로 가기 위한 도움닫기 역할을 하기도 한다. 2015년에 개봉한 한국 컬트 영화로서 큰 성공을 거둔 <검은 사제들> 같은 경우, 장재현 감독이 단편영화 ‘12번째 보조사제’를 통해 선보인 이야기를 장편으로 만든 것이다. 23세에 데뷔해 젊은 천재 감독이라 불렸던 폴 토마스 앤더슨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인 <부기나이트> 역시 그가 고등학교 시절에 만든 32분짜리 페이크 다큐 <더 덕 디글러 스토리>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관객은 단편 영화를 볼 때 영화를 배우는 학생들의 습작이나 장편의 축소판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단편은 장편과 다른 형식과 호흡이 있고 그것이 단편 영화만의 특별한 매력이 되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은 ‘단편은 장편의 전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작은 영화로 큰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단편의 매력을 강조했다. 참신한 소재와 형식으로 강렬한 에너지와 메시지를 힘있게 전하는 작품을 경험한다면, 장편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단편의 매력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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