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리용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자유 주제로 내 생각을 쓰는 것은 늘 막막하다. 내 볼품없는 의견이 인쇄되어 학교를 떠돌 거라 생각하니 겁도 난다. 쓸 거리를 찾고자 일기장을 뒤적거렸는데, 결국 ‘일기’ 자체가 이번 까리용의 글감이 되었다.

 ‘검사받는 일기’ 말고, 혼자만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 때는 재작년이다. 대학에 막 입학한 나는 생각보다 힘든 일들과 많은 선택지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내가 동경하는 사람들이 권하는 최고의 습관이 일기라길래, 속는 셈 치고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에 대한 장황한 설명으로 채웠고, 그림만 가득한 적도 있었다. 점차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서, 날짜가 없는 무지노트에 일주일에 한 두 번 많은 토막글들을 적어갔다. 그러면서 내가 느낀 일기의 즐거움은 ‘쓰는 즐거움’과 ‘읽는 즐거움’으로 나뉜다.

 김영하 작가는 ‘자기해방의 글쓰기’라고 했다. 감정은 무질서하지만, 글에는 문법이라는 질서가 있다. 글쓰기는 막연한 감정을 논리적으로 해부하는 과정이다. 막막하게 느껴지는 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감정을 표현할 단어와 문장을 세심하게 고른다. 막연함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감정 위로 올라선 더 강한 사람이 된다. 이것이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의 힘이다. 복잡다단한 밤 일기를 통해 머릿속이 차분해진 느낌이 들 때, 비로소 ‘쓰는 즐거움’을 경험한다.

 ‘읽는 즐거움’은 나를 일관성 있는 개체로 이해하는 것이다. 잘 해내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일기장을 읽다 보면, 나의 하루하루가 같은 리듬을 타고 있는 것 같아 안심된다. 나는 양귀자 작가의 <모순>에 나오는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나아가는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라는 문구를 좋아한다. 그 문구를 일기장에서 발견할 때, 그리고 같은 선상에 있는 과거의 선택들을 발견할 때, 내가 내디뎌야 할 다음 걸음이 명확해진다. 또한 일기장은 행복한 기억들이 쌓인 곳간이기도 하다. 행복은 부지런히 일구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 나에게, 일기장은 어떤 씨앗을 뿌릴지에 대한 고민을 덜어준다.

 새해를 맞아 야심 차게 꺼낸 일기장도 학기가 시작하면 뜸해지기 마련이다. 팁이 있다면, 예쁜 만년필을 하나 사는 것. 사각거리는 소리만큼 상쾌한 새 학기의 하루하루가 모두의 일기장에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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