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런닝맨’를 보다 보면 한 열혈기자를 볼 수 있다. 영화 중간마다 갑자기 튀어나와 형사와 콤비를 이뤄 깨알 같은 웃음을 준다. 능청스런 연기까지 동원하는 혼을 불사르는 취재, 온종일 따라다니는 집념, 사소한 단서도 놓치지 않고 배후를 찾아내려는 날카로운 시각. 이 모든 면모를 갖춘 그녀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다. 영화는 이 기자에게도 큰 문제를 안긴다. 취재하던 사건에 한 사람의 목숨이 달린 것이다. 사건을 보도하면 인질로 잡혀있던 한 사람이 죽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국정원의 악행이라는 특종을 놓치게 된다.

취재를 하다 보면 종종 “이러한 점은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서 저희가 눈감아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이 보도되면 학교나 학생들에 큰 불이익이 올 수도 있다”라는 말을 듣는다. 그때마다 소심한 기자는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경험한다. 기자 이전에 학생이기에, 한 개인으로 인해 다수의 학우들이 손해를 입을 수도 있기에 며칠 동안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매번 기자가 택한 선택지는 ‘학우대중의 알 권리’였다. 다행히 아직 문제가 없는 것을 보면 취재원의 ‘기우’가 아니었나 싶다. 삼호주얼리호 사태나 성범죄자의 신상 공개와 같이 뉴스를 보면 국민의 알 권리와 개인의 불이익이 상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카이스트신문사의 기자로 있으면서 알 권리를 우선순위에 두고 취재를 해왔지만 이런 딜레마는 여전히 기자를 고민에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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