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박정민 기자
일러스트 | 박정민 기자

 '코로나 끝나면 밥 한번 먹자.’사회적 거리 두기로 지인들을 쉽게 만나지 못하는 요즘, 가장 흔히 하게 되는 인사말이다. 사람들은 친구를 그리워하고, 일상으로 돌아가 함께 수다를 떨며, 웃고 교류하기를 원한다. 어쩌면 이는 우정의 중요성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정은 왜 중요할까? 단순히 이전부터 우정의 가치가 거듭 강조되어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우정은 과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기사를 통해 우정의 가치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찾게 되길 바란다.

 

우정과 사회적 뇌
 우정은 친구 사이의 유대감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우정을 규정짓는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 사이에서도 우정과 비슷한 양상을 관측할 수 있다. 개미 연구자였던 에드워드 윌슨은 카요산티아고 섬을 방문해 연구를 진행하며, 개미와 원숭이, 인간의 사회적 행동 사이에 유사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처럼 우정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그렇다고 우정을 연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학자들은 동물들 사이에 나타나는 일종의 사회성에 대해 동물행동학적인 접근과 진화론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특히 사회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사회성이 유전자에 축적된 진화의 산물이라고 여긴다. 분명한 것은, 우정에 어떠한 생물학적 기원이 있으리라는 점이다.

 유전자의 영향을 연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는 뇌 연구가 있다. 뇌에 관한 연구는 사회적 네트워크의 변화를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사회적 뇌 가설’은 MRI를 통해 생리학적으로 연구되었다. 사회적 뇌 가설은 인간의 뇌가 사회성과 관련된 요인들로 커졌다는 주장이다. 인간은 외부의 공격에 취약한 넓은 평야에서 생존하기 위해 무리를 지어 협력해야 했고, 무리를 유지하기 위한 고도의 정신적 능력이 요구되었다. 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이를 감당하기 위해 점점 커졌고, 결과적으로 현재와 같은 지능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가설을 연구하기 위해 연구팀은 대상자들에게 사회적 네트워크에 관한 설문을 실시하고, MRI로 뇌를 촬영했다. 친구가 많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뇌의 앞부분에 위치한 전두엽 중에서도 앞부분을 덮는 대뇌피질인 전전두피질, 머리의 양쪽 옆면에 위치한 측두엽, 측두엽과 두정엽이 만나는 부위인 측두두정접합의 크기가 컸다. 반면, 고독함을 느낀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상측두구(양쪽 귀 옆에 위치한 측두엽 부분)의 회백질이 작았다. 또, 한 연구팀은 fNIRS를 이용해 유아들에게서 사회적 뇌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분석하기도 했다. 이처럼 과학자들은 다양한 영상 기술을 이용해 뇌와 사회성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우정은 왜 중요할까? 여러 정답이 있을 수 있지만, 우정은 무엇보다도 생존에 도움을 준다. 사교 활동을 통해 얻는 사회적인 지지는 스트레스에 저항하는 힘을 키워준다. 대학원생이었던 리사 버크먼은 사회적 지지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장기 종단 연구 자료를 이용했다. 버크먼은 연구가 시작된 1965년에 참가자들이 보고한 사회적 유대감과 1974년까지 사망한 인구수를 조사했다. 그 결과, 사회적 유대가 낮다고 보고한 참가자일수록 9년 안에 사망한 확률이 높았다.

 반대로 우정이 없을 때, 즉 외로움을 느낄 때 사람들은 생리적 기능의 변화를 겪는다. 사회심리학자인 존 카시오포는 외로움이 심혈관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그의 연구팀은 UCLA 외로움 척도 조사로 참가자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를 구분하고, 일주일간 참가자들의 생활을 보고받았다. 이후 그들은 동맥이 수축하면 증가하는 주요 혈압 결정 인자인 총 말초 저항을 측정했는데,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학생일수록 이 지수가 훨씬 높았다. 심지어 외로움은 뇌의 기능을 약화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정은 건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던바의 수와 우정의 3단계 동심원
 친구가 있다는 게 좋은 일이라면, 과연 친구는 몇 명이나 필요할까? 여기에 대답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 바로 ‘던바의 수(Dunbar’s number)’이다. 던바의 수란 한 사람이 유지할 수 있는 친구 수의 최대치로, 150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150명은 새벽 3시에 홍콩 공항의 라운지에서 우연히 그 사람을 발견했을 때도 주저하지 않고 다가가 옆자리에 앉을 만큼 가까운 사람을 뜻한다. 로빈 던바는 150명이라는 수치를 검증하기 위해 다양한 곳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그가 처음 고안해낸 방법은 크리스마스카드 명단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카드를 보내는 풍습이 있다. 카드를 보내는 일련의 과정에는 돈과 시간이 든다. 즉, 카드 명단에 포함되었다면 어떤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영업 목적의 카드를 제외하면 말이다. 로빈 던바는 설문조사를 진행하여 아이부터 노년까지 포함된 첫 번째 표본에서 친구 수의 평균을 산출했다. 결과는 154명이었다. 그는 중세 영국의 토지대장을 통해 잉글랜드 농촌 마을의 평균 규모를 산출하고, 후터파 종교 공동체와 스웨덴 정부의 세금 징수관이 응대해야 하는 고객 수를 분석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의 네트워크 규모를 측정했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인간의 사회적 네트워크는 대부분 150명가량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 150명이 모두 동등하게 친밀한 것은 아니다. 150명의 사회적 네트워크 사이에도 층위가 있다. 각 층은 그보다 안쪽에 있는 층의 사람 수를 포함하며, 절친한 친구에 해당하는 5명의 원부터 이전 층보다 꼭 3배씩 커진다. 이 층들을 우정의 원이라고 부른다. 각 원에 있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혜택을 준다. 5명이 속한 원에 있는 사람들은 감정적, 물리적, 금전적인 도움을 아낌없이 제공하는 긴밀한 관계이다. 그보다 한 층 밖, 15명이 속한 원에 있는 사람들은 일상적인 사교 생활의 상대가 된다. 식사를 같이하거나, 영화를 함께 보는 사람들 말이다. 50명이 속한 원에 있는 사람들은 기념일에 초대할 만한 사람들이다. 그보다 더 밖, 150명이 속한 원에 있는 사람들은 평생 한 번 있는 행사에 참여할 만한 사람들이다. 그 밖에 속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타적으로 행동할 확률이 급격히 감소한다. 대신 약한 유대 관계 속에서는 새로운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사회적 네트워크는 무한히 확장될 수 없다.


우정을 견고하게 만드는 것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은 궁금증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우정을 유지할 수 있는가? 이미 적절한 답을 찾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떤 요소가 우정에 도움이 될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웃음은 사회적 유대에 중요하다. 레베카 베런은 축제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와 연극을 관람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코미디를 관람하고 웃은 사람들은 통증 역치가 상승했는데, 이는 엔도르핀 시스템이 활성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잔드라 만니넨과 라우리 눔멘마가 PET(양전자 방출 단층촬영)를 통해 웃음이 엔도르핀 시스템을 활성화하는지 검증한 결과, 웃음은 엔도르핀을 만들어냈다. 그뿐만 아니라, 함께 웃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더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앨런 그레이는 사람들에게 코미디 영상을 보여주어 웃게 만든 뒤, 그들이 낯선 사람에게 사적인 정보를 얼마나 알려주었는지 평가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실제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공개했다. 웃음이 만들어낸 엔도르핀이 사람들을 편안하고 느긋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둘째, 노래와 춤도 유대감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연구팀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때의 통증 역치와 유대감을 측정했다. 먼저 춤 실험에서는 사람들이 작은 집단을 이루어 춤을 추도록 지시했다. 연구팀은 이어폰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같은 음악을 들려주고, 서로 다르거나 동일한 동작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춤 동작이 과격해지고 일치해갈수록 통증 역치가 매우 증가했으며, 함께 춤춘 사람들에 대한 유대감도 커졌다. 함께 춤을 추며 엔도르핀 시스템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노래 프로젝트의 결과도 유사했다. 한 집단이 경쟁 집단과 화음을 맞춰 노래할 때는 경쟁 집단과의 유대감이 높아진 반면, 대결을 벌이면 유대감이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동작을 하게 만드는 노래와 춤의 특성은 집단의 유대감 상승에 기여한다. 

 그 밖에도 때때로 개최하는 파티, 스토리텔링, 종교의식 등이 우정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으며, 때로는 이 모든 것에 해당하지 않는 어떤 요소가 우정을 견고하게 만들기도 한다.

 

온라인 세상의 우정
 감염병 확산과 전자기기의 발달로 온라인상에서 교류하는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많은 사람은 디지털 세상에서 새롭게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의 경우 온라인과 오프라인상의 친구는 겹치게 된다. 첨단 기술의 발달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 사이의 우정을 유지해줄 수는 있지만, 그 기간이 영원하지는 않다. 결국, 관계를 맺고 보수하는 과정에서는 직접적인 소통이 필수불가결하다. 실제로 타티아나 블라호비크의 연구는 사람들이 대면 또는 화상 전화로 연락했을 때 만족도가 가장 높았음을 보여준다. 온라인상에서 즐거운 대화의 요건에 임재성(같은 방 안에 있다는 느낌)과 몰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는 우정을 유지하는 데에는 도움을 주지만, 직접적인 소통에는 미치지 못한다.

일러스트 | 박정민 기자

 친구는 우리가 선택한 또 하나의 가족이다. 우정이 개인에게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전례 없는 사회적 고립과 단절을 겪고 있는 현재, 이 기사를 통해 우정의 가치를 되새겨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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