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채 50일도 남지 않았다. 대선은 우리나라 미래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이벤트이지만, 특히 이번 선거의 시대적·사회적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평가된다. 새 정부 앞에는 우리 현실을 무겁게 짓누르는 기후위기에 따른 각종 재난·재해 급증, 미-중 간 헤게모니 갈등 격화에 따른 지정학·지경학 환경의 불안정화, 코로나19에 따른 사회경제적 위기 지속, 부동산 자산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불평등 심화 등 다양한 사회 모순이 있다. 여러 현안을 어떻게 해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지에 따라 우리나라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다. 학계, 문화예술, 언론, 종교, 사회운동계 원로들은 지난달 13일 발표한 ‘이번 대선은 활발한 공론의 장이 되어야’라는 성명에서 “이번 대선은 우리나라가 선진국 입구에서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거꾸로 갈 것인지를 가름하는 중대한 고비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에서 현안들에 대한 각 후보 진영의 정책이나 토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욕설, 녹취, 무속 등 네거티브 중심의 정치 공방이 공론장을 가득 채우면서 대선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과 피로감은 매우 커졌다. 언론 또한 ‘역대급 비호감’, ‘역대 최악’ 등의 표현을 동원해 가면서 부동층이 늘어난 정치적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기성 언론은 혼탁한 대선 공방전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설을 통해서는 네거티브 공방을 비판하고 정책 경쟁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실상 대선 관련 보도는 심층적으로 정책을 분석하기보다는 자극적이고 선정적 내용을 전하는 데 열을 올려 언론의 기본 책무인 의제설정 기능을 방기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지난 18일에서 20일까지 우리 학교 과학기술정책대학원, 학부·대학원 총학생회 등이 주관한 ‘대선 후보에게 직접 묻고 듣는 대선 캠프와의 과학정책 대화’는 각 후보의 과학기술 정책에 담긴 철학과 비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유력 대선 주자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참석하지 않아 다소 김이 빠진 감이 없지 않았지만, 대선 후보들의 과학기술 정책을 듣고 토론하는 형식을 넘어 ‘기후위기로부터 한반도를 구하기 위한 계획은 무엇입니까’ 등 ‘대통령을 위한 10가지 과학 질문’을 통해 후보들에게 과학기술 공약을 제안하는 신선한 형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 같은 행사는 대선을 정책 공론의 장으로 만드는 것은 대선 후보에게만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회 각계각층이 각각의 이해와 요구를 적극적으로 제시해 비방, 유언비어, 고발, 폭로가 난무한 혼탁한 대선을 새롭게 바꿔 나가야 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대선이다. 선거 전에 후보들의 철학과 비전을 확인할 수 있는 정책 공론의 장을 하루속히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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