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본래 성층권을 유영하는 베테랑으로
한눈에 보고도 추측할 수 있기로는
뱃가죽이 구름결을 쓸고 다니며
꼭대기 나뭇잎과 이따금 하이파이브 하고
꽃향기 행렬과도 능숙히 인사할 수 있었다

그의 당찬 날개뼈에 속도가 붙을수록
덩달아 신이 난 계절들도 쾌속으로 이어달리기를 했을 것이다
어느새 그의 격납고가 북적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귀항을 하면
삐약거리는 아이들과 와이프가 있고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직함이 발등을 눌러 그런지
총총거리는 걸음걸이도 시원찮았을 것이다
쓰러지듯 엎드려 직접 가져온 연료를 나눠 채우고 나면
감았다 뜬 눈앞에는 야속하게도 똑같은 풍경이 서있을 테고
오로지 변하는 것은 하느님의 기분뿐
그날은 모처럼 훌쩍거리시는 날이었다

그의 빗길 출정은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왕년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잡초밭을 새 활주로로 삼아
도약하려는 위장색이 흙빛으로 짙어졌다
한 번도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가
나지막이 짹 하더니 떠오르는 것이었다
발이 떨어지자마자 이해할 수 없는 결연함이
스텔스 기능을 탑재시키고
레이더조차 잡지 못하는 뜻밖의 고도로
저공비행한다
빗방울이 연신 부딪치며 회항하라 회항하라 하는데
부릅뜬 쌍라이트는 외려 더욱 맑게 빛난다
흰 구름 쓸던 뱃가죽은 검은 아스팔트를 스친다
맞은편에선 아스팔트의 주인이
매섭게 돌진하던 참이었다
불시착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그는 날갯짓을 늦출 여유도 옆을 볼 생각도 없었고
메이데이 교신조차 시도하지 못한 채로 곤두박질쳐
싸늘하게 눌어붙어버렸다

아스팔트가 빗물을 겔겔 흘리며
그를 소화해내는 데는 사나흘이 걸렸다
뻘건 골은 쥐어 짜인 게장처럼 삐져나와 썩었고
이제 그만 바람에 쓸려가게 놓아줄 법도 한데
속의 영광스런 메아리는 지금도 그 자리에 붙잡혀 있다

'비가 오자면 먹이는 다들 밑으로 내려간다'
비가 오기에 더 쏜살 같았던 기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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