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23명의 학생들이 총 76편의 시를 KAIST 문학상에 투고해 주었다. 갈수록 거세어지는 팬데믹의 파고 앞에서 시 창작의 열기도 예년보다는 수그러든 양상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생활 세계를 언어로 포착해 보려는 학생들의 노력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한 편 한 편의 작품을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다. 모든 작품이 나름의 정서적 울림을 안겨주었지만 당선, 가작 각각 1편씩이라는 조건을 준수하기 위해, 기성의 시적 관행을 답습하지 않는 개성적인 시각과 문제의식의 깊이를 확보한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당선작인 심지수의 <저공비행>은 이상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생활로 귀의하게 된 한 현대인의 도전을 그려낸다. 이 작품에서 독자들의 주의를 사로잡는 부분은 타성에 젖은 생활을 하던 ‘그’가 돌연 주변을 경악하게 하는 빗길 출정에 나서는 순간일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결연함’으로 가득찬 그의 신산한 비행은 참담하게 실패하지만 화자는 그의 흔적 속에서 ‘영광스런 메아리’를 경청해 주고 있다. 다분히 우화적인 설정이 냉혹한 현실과의 연관을 흐리게 하는 점은 아쉽게 생각되지만, 도구적 이성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실존적 고투의 순간을 ‘저공비행’이라는 독특한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가르는 장벽들이 더없이 높아만 보이는 오늘날, 가슴 속 불씨로 남아 있는 도약의 힘을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높은 작품이라고 본다.
 가작인 남성우의 <---.-...--_>는 특수자적 감성에 대한 성찰을 재치있게 풀어내었다. 빈틈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현실의 리듬 속에서 화자는 스스로를 ‘중간중간 끊어진 영화필름’, ‘생각이 말보다 빠른 사람’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어긋남 속에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놀림 받기도 하고 여러 불편을 겪기도 하지만 화자는 타인의 규정에 함몰되기보다는 자신의 언어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 전경과 배경 사이의 모순된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특수한 촬영 기법인 ‘스텝 프린팅(step printing)’과 와이드 스크린에 적합한 필름 포맷인 ‘비스타 비전(vistavision)’을 활용해서 문제적인 존재였던 자신을 심미적인 존재로 새롭게 현실 속에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개인의 특성이 빅 데이터에 흡수되어 빠르게 군중화되고 있는 현시대에, 환원되지 않는 존재의 의미를 언어적으로 탐색하는 시의 소임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참신한 언어 감각을 보여주면서 현대 사회의 본원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우수성을 가르기가 매우 어려웠다. 다만, 심지수의 작품이 보다 핍진한 세계 인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경험과 더 활발히 조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아울러, 투고한 작품들이 일정한 수준을 담보하면서도 다채로운 시적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밖에 훌륭한 성취를 보인 많은 작품들이 있었다. 남수훈의 <삼각주의 모래알들>은 삼각주와 모래알의 역학이라는 구체적인 현상에 청춘의 표상을 대입한 점이 참신하게 읽혔다. 김유환의 <탄성>은 진실을 향한 구도의 자세를 역동적 이미지로 형상화하였고, 김민석의 <장마>는 유사하면서도 이질적인 기표 간의 상관관계를 예리하게 관찰하였다. 이들 작품도 수상작으로 선정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지만, 수상작에 비해 언어적 형상화나 문제의식의 설정 면에서 좀 더 도전적인 자세로 나아가지 못하였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날 인간의 언어는 인공의 언어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가 인류의 복리에 끼칠 긍정적인 영향도 많지만, 세계와 관계하는 보다 인간다운 언어는 무엇일지, 세계에 대한 인간의 경험을 보다 다채롭게 하는 언어는 무엇일지에 대한 성찰 또한 결코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려운 시대에 언어의 위의를 지키려는 많은 학생들의 용기와 도전에 깊은 찬사를 보내며, 수상자들에게도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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