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얼 퍼거슨 - 『둠 재앙의 정치학』

    재앙은 우연적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인류는 갑작스레 다가오는 재앙 앞에 무기력하다. 현대 사회에서 벌어진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주었다. 갑작스러운 재앙 앞에 최첨단 기술과 안정적 시스템을 자랑하던 선진국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여전히 재앙에 무기력한 것인가. 또 재앙이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인류와 재앙의 관계는 어떠한가. 영국의 저명한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재앙들을 다양한 관점과 방법론을 토대로 살펴보며 <둠, 재앙의 정치학>을 통해 답한다.

    여전히 인간은 재앙에 무기력하다. 니얼 퍼거슨은 그 이유로 ‘사회적 네트워크’와 ‘정치 시스템’의 나약함을 지목한다. 중세시대 인류를 휩쓴 대재앙인 흑사병이 아시아보다 유럽에서 비교적 더 심각했던 이유를 저자는 네트워크로 설명한다. 14~15세기 유럽은 상업은 크게 발달했기 때문에 무역로를 통한 국가 간 상업 네트워크가 크게 발달했다. 또한 도시가 커지며 도시 내부의 네트워크도 성장했다. 그에 반해, 아시아는 면적에 비해 네트워크가 유럽보다 덜 발전했다. 문제는 잘 발달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전염병이라는 재앙 앞에서 오히려 인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현대 글로벌 사회는 인류 역사상 사회적 네트워크가 가장 발달한 시대이다. 코로나19의 장기화, 빠른 전파 속도 등의 이면에는 인류가 갈고 닦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한몫을 했다는 것이다.

    인류가 재앙에 대항하는 데 있어서 정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저자는 ‘정치 시스템’의 문제가 꼭 지도자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일어난 수많은 재앙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바로 중간층의 무능과 실책임을 지적한다. 일례로 미국의 챌린저호 폭발 사건의 배경에는 공중폭발 확률을 나사 엔지니어들이 1%라고 말했음에도 중간관리자들이 0.001%라고 판단했다는 사실이 있었다.

    크고 작은 재앙들은 앞으로도 계속 인류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럼에도 인류는 살아있고 진보한다고 말한다. 재앙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인류는 결국 살아남아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인류가 재앙을 견뎌내고 성장할 것이라는 저자의 믿음은 지난 2년간 코로나로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이자 희망의 메시지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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