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박정민, 이윤지 기자   
일러스트 | 박정민, 이윤지 기자   

    어렸을 적 주의가 산만하고 쉽게 집중하지 못하는 천방지축 아이에게는 ‘혹시 쟤 ADHD 아니야?’라는 걱정 섞인 수식이 따라붙었다. ADHD는 다른 정신질환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널리, 그리고 정형화된 형태로 대중에게 각인되었다. 그러나 ADHD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단순한 모습이 아니며, 소아·청소년에게 한정된 질환 또한 아니다. 사람들이 고정관념을 견고히 쌓아갈수록, ADHD 환자들은 고립되며 진단과 치료가 어려워진다. 사람들은 자신 혹은 주변인이 ADHD일 거라는 의심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 글을 통해 성인 ADHD에 대한 진입장벽이 조금이나마 낮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ADHD란 무엇인가

    ADHD(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과 충동성 또는 이 모든 문제가 혼합되어 나타나는 장애다. 2016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만 2~17세 소아·청소년 중 9.4%인 약 610만 명이 ADHD를 앓고 있다. 또한 추적 연구에 따르면 ADHD로 진단받은 아동 중 절반 이상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ADHD 증세를 보인다. ADHD 관련 역학 연구 사례는 많지 않지만, 연구자들은 전체 인구 중 약 4% 정도가 ADHD가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 그러나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서 2017년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성인 ADHD 환자 중 적절한 치료를 받는 비율은 1% 미만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우리 주변에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ADHD 환자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다음의 문항 중 자신에게 몇 가지나 해당하는지 한 번 세어보자. 1) 해야 할 일을 잊거나 친구와의 약속을 깜빡해 난감했던 적이 있는가? 2) 일의 순서가 명확한 일을 진행할 때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는가? 3) 일의 어려운 부분을 잘 해결한 뒤에 그 일을 끝맺지 못한 적이 있는가? 4) 성가신 일을 미루거나 피한 적이 있는가? 5) 말이나 행동을 과장되게 하거나 멈춰야 할 때 그러지 못한 적이 있는가? 6) 오래 앉아 있을 때 다리를 떨거나 손을 만지작거린 적이 있는가?

    위에 제시한 문항은 성인용 ADHD 자가보고형 설문인 K-ASRS(Korea Adult ADHD Self-Reporting Scale)의 문항으로, 실제 국내 임상 현장에서 ADHD 선별을 위해 사용된다. ADHD 증상을 예측하는 문항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인이 이 중 4개 이상 해당된다면 전문가의 심층적인 면담 및 평가가 필요하다. 이 여섯 항목으로 진단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므로, 최종 진단은 전문가의 소견이 필수적이다.

충동적이고 산만한 아이

    ADHD는 초기 발달 단계인 학령 전기에 발현되어, 평생에 걸쳐 증상이 지속되는 만성적인 경과를 보인다. 증상이 처음 나타나는 유년기에는 생각이나 움직임, 태도를 조절하지 못하는 형태로 나타나며, 지속적으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충동성, 감정조절 장애, 마음 유랑 등의 증상을 보인다. 

    주의력 결핍 증상을 뚜렷하게 보이는 환자는 자신의 산만함을 감추기 위해 느리게 생각하고 표현한다. 길고 장황하며 관련이 없는 방식으로 생각을 하며 이를 표현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의 산만함은 내적으로 발현되어 외적으로는 전혀 산만하지 않기 때문에, 보수적인 의사들로부터 ADHD 진단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흔히 유년기 ADHD의 대표적 증상으로 꼽는 과잉행동 또한 성인기 연령에서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성인기의 과잉행동은 불안감과 이로 인한 과도한 수다스러움, 끊임없는 정신 활동 등이 있다. 또한 적당하게 긴장을 푸는 법을 알지 못해 항상 경직되어 있거나 술이나 약물에 의존하기도 한다. 충동적인 행동을 통해 주변 사람들과 대인관계 갈등이 잦게 발생하며, 성인의 경우 대부분의 충동성이 내재화된다. 충동구매로 인해 많은 부채가 발생하거나, 폭식과 폭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표면에 나타난 이러한 증상 위주로 진료가 이루어지면, ADHD는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성인 ADHD의 또 다른 공통된 특징은 ‘정신적으로 차분하지 못함’으로 불리는 과도한 마음 유랑(mind wandering)이다. 마음 유랑은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ADHD를 가지고 있는 성인기 연령은 서로 관련이 없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뛰어다녀 쉽게 집중하지 못한다. 또한 감정 소모가 굉장히 심하고 소진과 회복이 매우 빠르다.
 
일상 속 어려움

    ADHD를 앓고 있는 대부분의 성인은 사람들과 섞여 평범한 하루를 보내려 노력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교통사고, 충동구매, 이혼율, 알코올 중독, 비만, 자살률, 부족한 수면시간 등 ADHD 환자들은 많은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이를 피하고자 비장애인보다 몇 배 더 심혈을 기울여야만 한다. ADHD 진단을 받지 못해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자각을 하지 못한 상태라면 위험성은 더 커진다.

    또한 ADHD 아동의 65% 이상은 우울증, 틱장애, 자폐증, 반항 장애 등 다른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성인에게도 해당된다. ADHD가 있는 성인 중 절반 이상이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 약물 중독, 대인 관계 문제 등 다른 정신과적 문제가 있으며, 이는 ADHD의 진단을 더 어렵게 한다.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의 저자 신지수 작가 또한 자신이 ADHD 환자를 진단하는 임상심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서른이 될 때까지 자신이 ADHD일 것이라는 의심조차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ADHD의 원인과 치료

    1980년대 과학계는 ADHD 증상들이 대뇌 발달의 지연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증상들은 성인기에 도달하기 전 신경 세포들이 성숙해지며 사라져야 했다. 실제로 ADHD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가장 유력하게 제시되는 가설은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조절 장애다. 실제로 해당 작용을 타깃으로 한 약물치료가 유의미한 효능을 보이지만, 이런 장애가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병태생리학적 기전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ADHD의 정확한 원인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정확한 정보는 ADHD가 강한 유전적 요인에 환경 요인과 사회 요인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라는 것뿐이다.

    긍정적인 소식은 ADHD에 대한 연구가 거듭되며 치료제 또한 빠르게 개발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FDA에서 승인된 ADHD 치료제들은 50~70%의 환자에게서 유의미한 효과를 보인다. 현재 성인 ADHD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는 약은 크게 정신자극제와 비정신자극제 계열로 나뉜다. 정신자극제는 도파민 재흡수 펌프를 차단함으로써 시냅스의 도파민을 늘리고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키며, 가장 널리 알려진 약인 암페타민 계열과 메틸페니데이트 계열이 있다. 반면 비정신자극제는 노르아드레날린 재흡수 펌프를 차단해 체내의 노르아드레날린 농도를 증가시킨다. 약이 효과를 발휘하면 ADHD 성인들은 멈추지 않던 생각에 ‘제동이 걸리는 효과’를 느낀다고 보고되었다. 증상이 호전된 환자들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생각을 다시 통제할 수 있게 되고 전처럼 쉽게 산만해지지 않으며, 더 잘 정리된다고 말한다. 또한 2005년 한국얀센의 발표에 따르면 하바드의대 연구진이 현재 상용되는 ADHD 치료제 '콘서타(성분명 메칠페니데이트)'가 큰 부작용 없이 ADHD 증상 완화에 효과를 보인다고 한다.

    ADHD가 삶의 난도를 높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특성 때문에 더 특별한 삶을 살기도 한다. ADHD를 전공한 심리학자 캐슬린 나도(Kathleen Nadeau)는 그의 저서 <바쁘게 앞서가는 모험>에서 ADHD 환자들은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ADHD 환자들이 산만하고 부주의하며 충동적인 것은 사실이나, 혁신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으며 부정적인 감정을 금방 소모하고, 에너지가 넘친다고 말한다. 또한 매사에 자발적이고 창의력이 높으며 수다스러워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고도 언급한다. 중요한 것은 결함을 발견하고 절망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약점을 보완하며 강점을 꽃피우는 것이다. 

참고문헌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 신지수, 휴머니스트
<실수투성이 당신, 성인 ADHD?: 성인 ADHD의 이해와 생존전략>, 애니크 빈센트, 한울림스페셜

일러스트 | 박정민, 이윤지 기자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