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스 카락스 - <아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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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이 오르면 세상은 무대가 된다. 관객은 웃지도, 박수를 치지도 말고 쇼가 끝날 때까지 침묵해달라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심지어는 “숨도 쉬지 말아 달라”는 요구와 함께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독창적이고 기이한 에너지로 가득 찬 쇼가 시작된다.

    잘나가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와 오페라 가수 안은 각자의 정점에서 만나 사랑을 시작한다. 헨리는 성공적으로 쇼를 마치고 안에게 달려가고, 안은 자신을 둘러싼 파파라치 사이에서 그를 반긴다. 운명 같은 사랑에 빠졌지만 둘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쇼가 어땠냐는 질문에 ‘죽여주는 무대’였다고 답하는 헨리와 달리 안은 ‘관객을 구원했다’ 말한다. 헨리는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 관객을 웃긴다 말하고 안은 관객을 위해 몇 번이고 죽음을 연기한다. 이러한 간극은 둘 사이에 벌어질 비극을 암시하는 듯하다.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던 이들 사이에 딸 아네트가 태어나지만 갈수록 더 높이 올라가는 안과 달리 헨리의 인기가 하락세를 타며 갈등의 싹이 움트기 시작한다.

    ‘심연을 들여다보지 말라’ 레오스 카락스의 내면에서 비롯된 고뇌와 영화 예술에 대한 고민은 시종일관 심연을 두려워하는 헨리를 통해 표현된다. 헨리는 발밑의 어두운 심연을 두려워하면서도 필연적으로 그 심연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파괴해나가기 시작한다. 헨리가 들여다본 심연은 영화에서 현실과 환상이 혼란스럽게 뒤섞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영화는 미국 록 밴드 스파크스(SPARKS)의 음악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형식을 통해 무대의 경계를 허물고, 비현실적인 장치를 이용해 관객이 하나의 연극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아기 아네트가 실제 사람이 아닌 마리오네트 인형으로 표현된 것이 대표적이다. 영화, 더 나아가서 예술의 존재에 대한 심연과 인간 본연의 어둠은 <아네트>가 가진 자기 파괴적 에너지를 통해 관객을 압도한다.

    <아네트>는 <소년 소녀를 만나다>, <퐁네프의 연인들>, <홀리 모터스> 등의 작품을 통해 대체 불가능한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는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9년 만에 선보인 신작으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되었으며 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러닝 타임 내내 펼쳐지는 레오스 카락스 감독만의 아름다운 형식미는 ‘영화와 관객이 만날 장소는 극장뿐’이라고 주장하는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영화답게 극장에서 봤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헨리를 되돌리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세 가족은 크루즈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하지만 이들이 맞닥뜨린 건 평화로운 일상이 아닌 거대한 폭풍이다. 크루즈에서 겪은 사건으로 인해 헨리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건너게 되고 아네트 역시 잔혹한 변화를 맞게 된다. 영화 초반에 직접 등장하는 레오스 카락스 부녀의 모습을 통해 <아네트>가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자기 고백이자 속죄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이야기가 전개되며 드러나는 그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영화 후반까지 숨을 죽인 채 헨리의 최후를 목격함으로써 관객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어두운 영화적 경험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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