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고지에 오비오마 - <어부들>

    벤자민과 세 명의 형들은 끈끈했다. 넷 중 하나가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이라도 받으면 누가 먼저일 것 없이 나서서 싸웠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항상 함께했다. 엄격하지만 애정 많은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고 어른에게 대들거나 예의 없게 구는 일이 없었다. 서로를 감싸고 사랑했으며 의지했다. 화목했던 가족에게 균열이 일어난 것은 네 형제가 인적 드문 강으로 낚시를 다니다가 어떤 일을 겪은 이후였다. 동네의 광인으로 소문난 아불루가 소년들에게 끔찍한 예언을 한 것이다. 예언의 주인공이자 맏형인 이켄나는 두려움에 잡아 먹혔고, 그렇게 심어진 불신의 씨앗은 결국 실체가 되어 가족에게 들이닥친다.

    아불루의 예언은 광기가 어려 있지만, 힘이 있었다. 몇 번이나 그의 예언이 들어맞았던 탓에 사람들은 아불루의 혀에 재앙의 목록이 들어있다고 믿었다. 그가 말했던 방식 그대로 사람들이 죽기도 했으며, 강도나 납치 사건을 예견하고 막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예언이 가지는 진짜 힘은 예언을 믿는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에 있다. 작가는 바로 이 점을 예언을 들은 이후로 주변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된 이켄나의 변화를 통해 보여준다. 이켄나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지켜냈던 동생들을 의심하고 경계했다. 큰동생 보자가 과거에 자신에게 행했던 일을 떠올리고 왜곡하여 자신을 향한 허구의 화살을 실체로 바꾸려 한다. 그렇게 어린아이들이기에 가능한 순수함이 아불루의 예언에 힘을 실어주었고, 역설적이게도 악을 쉽게 행하도록 만들었다.

    ‘어부들’은 치고지에 오비오마의 첫 장편 데뷔 소설로, 전 세계 27개국 언어로 판권이 계약된 화제작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최근의 목소리 상’을 비롯한 5개의 문학상을 받았으며 부커상을 비롯하여 14개의 문학상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 이 소설로 오비오마는 ‘치누아 아체베의 진정한 계승자’라는 찬사를 받았고 2015년 <포린 폴리시>의 ‘세계의 100대 사상가’로 지명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올해 8월에 출간되었다. 작가는 한국 독자들을 향한 메시지에서 ‘어부들’을 통해 형제간의 보편적 연대와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사랑에 대해 다루었으며 이에 공감하길 바란다고 전한다.

    예언이라는 신화적 소재와 시적인 구절은 그리스 신화를 연상시킨다. 가족에게 일어난 사건을 어린 벤자민의 눈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이야기가 담담하면서도 극적으로 전개되어 몰입도를 한껏 높인다. 그와 동시에, 옛것과 새것이 혼재된 1990년대 중반 나이지리아의 시공간적 배경은 인물들이 가진 생각과 경험에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특히 이보어와 영어를 섞어 말하는 점이나 기독교와 토속 신앙이 공존하는 점 등이 있다. 이처럼 오비오마가 만들어 낸 탄탄하고 치밀한 세계관 속에서, 독자는 네 형제의 상황에 푹 빠져들게 된다. 

    작가는 ‘어부들’에서 개인의 두려움과 관계의 작은 균열이 어떻게 큰 비극으로 번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특유의 호흡으로 이끌어 나간다. 또한, 굵직한 사건을 제하더라도 ‘어부들’의 세계에서 그려지는 형제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과 크고 작은 갈등은 그 어느 문화권에 속한 사람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책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지극히 보편적인 공감대와 속도감 있는 전개를 통해 오비오마가 감각적으로 그려낸 세계로 초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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