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보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 방향 감각이 딱히 뛰어나지는 않다.

예상치 못한 곳에 도달하면 당황한다. 같은 곳을 일곱 번씩 돌며 헤매기도 하고.

하지만 발길이 닿는 대로 걷는 여행이 좋다.

어쩌다 발견한 새하얀 달 위에 첫 번째 발걸음을 남기는 건 꽤 즐거운 일일 테니까.

 

여수에 방문한 목적은 하나였다. 밤바다를 보며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부르는 것. 어느 바다에서, 어떤 시간에 부를지 같은 건 정하지 않았다. 나는 대전에서, 친구들은 서울에서 내려와 여수에서 만났다. 버스에서 점심을 정하고, 점심을 먹으면서 케이블카를 타자고 결정했다. 어쩌면 애매하지만 어찌 보면 확고한 순간순간의 결정으로 하루를 걸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다본 바다에 빨간 등대가 보였다. 등대 아래서 사진을 찍자는 생각 하나로 케이블카 승강장에 내려 무작정 걸었다. 대충 저 방향이다, 이 감각 하나만 믿고.

길을 잃을까 지도를 켰다. 이미 많이도 돌아왔다. 나는 약간의 걱정을 담고 친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는 이미 길을 너무 많이 벗어났다고. 등대로 가기까지는 아마 지금껏 걸은 만큼 또 걸어야 할 거라고.

친구 하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산책 좋아해.

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가다 보면 도착하겠지.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시간도 많고, 날씨도 좋고. 돌아가도 나쁠 건 하나도 없다고.

나는 핸드폰을 내렸다. 산책로를 따라 빙글빙글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끝없는 계단을 오르다 보니 공원의 정상이 보였다. 또 계획한 길은 아니었지만, 정상에 올랐다. 이순신 장군님께 인사를 올리고.

좁디 좁은 골목을 걸었다. 웬 주택가 사이 골목들이 나왔다. 무섭답시고 줄줄이 기차놀이라도 하는 것 마냥 내려왔다. 무릎이 나갈 것 같다 외치면서도 걷는 건 포기하지 않는 게 꽤 웃기기도 했고.

국궁장을 발견했다. 슬며시 열려 있는 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의 시야를 보여줄 수 있다면 보여주고 싶다. 이곳의 전경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 되지 않을 거라는 추측 또한 꽤 정확할 것 같고.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았을 게 뻔히 보이는 곳에서 잠시 멈춰 눈에 담기는 모든 것을 감상했다. 케이블카와 반짝이는 다리, 일몰의 색과 어두워지는 사위. 그래, 지도에는 표기되지 않는 곳이다. 전망 좋기로 유명한 장소로 알려진 것도 아니고. 흔한 비유로 치자면 진흙 속 원석을 발견한 느낌. 비밀스러운 감격에 숨이 조금 벅차고, 이곳에 닿은 나의 걸음이 계획에도 지도에도 없었다는 사실이 주는 낯선 흥분감. 어쩌면 계획적인 인간의 답지 않은 충동이 낳은 최고의 결과물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저녁 내내 지도에 없는 골목길과 예상 경로를 벗어난 산책길을 오래오래 걸었다. 우거진 숲 사이로 보이는 등대를 가리키며, 결국 방향은 맞았다고 한바탕 웃기도 했다. 난데없이 설치된 철봉에 매달려 어린 시절을 괜히 추억하기도 하고, 결국 발견한 등대 옆 항구에 쪼그려 앉아 목적을 달성했다. 분명 포부 넘치게 등대를 가리켰을 땐 노을이 분홍색이었는데, 돌고 돌아 도달한 목적지 앞에선 별과 달이 선연하게 빛나고 있더라. 차갑고 짠 바닷바람을 맞으며 부르는 ‘여수 밤바다’는 새카만 향기와 버적거리는 맛이 났다.

 

내 발걸음이 닿은 모든 곳은 나의 길이었고, 내 눈길이 닿은 모든 시간은 나의 여행이었다. 내 여행의 정의는 그러하다.

지도를 보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 방향 감각이 딱히 뛰어나지는 않다.

예상치 못한 곳에 도달하면 당황한다. 같은 곳을 일곱 번씩 돌며 헤매기도 하고.

하지만 발길이 닿는 대로 걷는 여행이 좋다.

계획하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풍경을 사랑하게 되어버려서. 아무도 밟지 않은 흰 눈 위에 남기는 내 첫 발자국이 마음에 들어서.

딱히 여행을 인생으로 비유하고 싶지는 않다. 낯선 곳의 색과 온도가 언제나 환영받으리라 일반화시킬 생각도 없고. 하지만 이어질 나의 시간에서 경로를 벗어나는 일은 꼭 올 것이라는 걸 아는 이상, 예상 밖의 경로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 없애는 게 좋을 것이다.

한 번쯤은 아무렇게나 향하는 여행을 겪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당신 또한 의도치 않은 풍경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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