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바쁘게 달려가고 있기에, 잠깐 쉬어가겠다는 말은 사치처럼도, 엄살처럼도 느껴진다. 휴식이 뒤처짐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그럼에도 쉬어가자는 말을 하고자 한다.

    지난 봄학기, 삶에 있어서 슬럼프를 겪었다.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고, 공부하고자 해도 책상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일상적인 무기력함에 온종일 침대에 붙어있다가도 열심히 사는 주위를 보면 불안했고, 그럴수록 점점 아무것도 손을 대기 싫어졌다. 때맞춰 온갖 걱정들이 밀려왔다. 주는 진로에 관한 것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겪다가, 이것을 슬럼프라 결론지었다.

    슬럼프인가보다 생각하면서도 쉽게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감히 내가 슬럼프를 겪어도 될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딱히 힘든 일이 있었다고도, 지칠 만큼 열심히 살았다고도 함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나보다 힘들었던 사람도, 나보다 열심히 했던 사람도 수없이 많을 터인데 그 사이에서 내가 지쳤다고 말하는 것은 엄살이라고 생각했다. 진로 고민이라는 것도 핑계처럼 느껴졌고, 모두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시기, 나만 슬럼프가 왔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게 부정하면서도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학점을 최소로 남기고, 뒤따르는 방학 한 달간의 일정을 모두 비웠다.

    방학이 되자마자 바닷가 마을의 할머니 댁으로 내려갔다.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드럼 학원에 다니고, 헬스장을 다니면서 꾸준히 운동을 했다. 못 읽던 책도 읽고, 그림도 그렸다. 교내 상담센터에서 상담도 꾸준히 받았다. 최대한 잘 먹고 잘 자면서 그동안 내가 하고 싶던 일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조금은 아쉬운 한 달의 휴식을 끝내고, 생각이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충전의 시간을 가진 후 그동안의 고민을 다시 짚어보자, 조금 더 천천히, 꾸준히 생각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그것들이 큰 스트레스였던 이유는 결국 생각의 여유를 가질 힘이 없어서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다음으로 생각한 것은 조금 쉬어도, 천천히 가도 된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에너지를 소비하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언젠가는 그것이 바닥나게 될 것이고, 그렇기에 휴식은 꼭 필요한, 어쩌면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진부한 문장 하나를 빌려 오자면,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오래달리기이다. 지금 남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은. 실제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와는 관계가 없다. 오히려 경쟁에 의식해서 쉼 없이 오버페이스로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나가떨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페이스를 제대로 알고, 중간중간에 물도, 음식도 보충하며 오랫동안 나아가는 것이다. 쉬어도 되는 자격 같은 것은 없다. 에너지를 소진하는 속도도, 그 한계치도, 혹은 충전하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렇기에 지금 자신이 지친다고 느끼면 그것은 그냥 지친 것이다. 나 자신에게 ‘넌 그렇구나’ 말해주고 인정하며, 필요한 만큼 휴식을 취하면 된다. 그걸 알고 나서부터 난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 보일 때마다 말한다. “쉬는 건 어때? 네가 지친 걸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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