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환 수습기자
김유환 수습기자

    한 때 시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김영하 작가가 계기였죠. 한 영상에서 그는 대학교 시절, 매일 시를 외웠다고 했습니다. 여자친구가 시를 좋아했다나요. 시를 암송했던 경험이, 훗날 소설을 쓰는데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다음날, 저는 바로 시집을 사러 영풍문고로 달려갔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문장만 보면 입가에 퍼지는 웃음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시적 언어가 이런 어여쁜 글을 쓰게 해줄 거라 믿었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아침을 시 하나를 외우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직접 시도 좀 써봤습니다. 

    그런데, 시는 어렵더군요. 그것은 추상화의 극치였습니다. 에세이처럼 상념들을 늘여놓는게 아니라, 농축시켜야했습니다. 저는 점점 진이 빠졌고, 결국 그렇게 '글쓰기를 위한 시 읽기'는 끝나갔습니다. 시는 타고난 문학인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며 애써 변명했습니다. 

    어느 날, 책장에 있던 시집을 우연히 펼쳤습니다. 그러고는 침대에 누웠습니다. 안경을 손수건으로 닦고, 맛있는 글을 탐색할 준비를 했습니다. 한 시를 찾았습니다. 제목은 선잠이었나요.  한 줄을 낭송하고, 눈을 느리게 감았습니다. 비참한 상상력으로 한 세계를 그려갔습니다.  그 순간, 옅은 웃음이 입가에 풀어졌습니다. 아, 내가 시를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시는 글이 아니라 삶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시는 힘이 있습니다. 삶을 예술로 만드는 힘이 말이죠. 시는 낯선 언어를 도구로, 일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방점을 저는 '일상'에 찍습니다. 시의 배경이 된 경험들을 생각해봅시다. 특별하던가요? 아니요. 대게는 매우 평범합니다.

    윤동주의 <별헤는밤>는 그저 가을 밤을 올려다본 경험이 아니던가요?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는 실수로 연탄재를 발로 차는 누군가를 봤을 뿐입니다. 김춘수의 <꽃>은 우리가 지나치는 평범한 꽃을 주제로 삼지요.

    이런 평범한 경험은 시를 통해 예술로 바뀝니다. 시인의 역할이 바로 이것입니다! 시인은 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법을 아는 자인 것이죠.

    기형도 처럼 천재 시인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 모두 시시(詩詩)한 일상을 살아야 할 필요성이 있지요. 왜냐면 시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경험 없이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멋진 삶이 아니라도, 시를 쓸 수 있다고, 비루한 일상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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