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이윤지 기자
일러스트 | 이윤지 기자

동서양 할 것 없이 정원을 가꾸는 문화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프랑스에 베르사유 정원이 있다면 중국에는 이화원이 있다. 일본의 균형 잡힌 액자식 정원도 유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전통 정원은 어떨까? 한국의 정원은 인위성을 최대한 배제한다. 만약 인공물을 첨가한다면 자연을 더 잘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인공 경물의 개성이나 존재감이 강하지는 않고, 보이는 풍경도 자연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다른 나라의 정원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한국의 정원은 찬찬히 볼수록 느낄 수 있는 은근한 매력이 있다. 옛사람들의 발길을 따라 밟게 하고, 발길의 주인이 시선을 옮겨가며 어떤 사색에 빠졌을까 상상하게 한다.

    우리 전통 정원의 특징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원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나라마다 매우 달랐다는 것부터 이해해야 한다. 중국의 정원은 여러 감상용 경물을 밀도 있게 진열하고 다양한 조원 수법을 이용해 감상자의 시선을 특정 공간에 머물게 한다. 즉 연출가의 의도에 따라 진행되는 연극과 유사하다. 일본의 정원은 경물의 배치를 절묘하게 설계하여 비례와 균형을 맞춘다. 완벽한 구도를 추구하는 그림과 같다.

    이들과 비교하면 한국의 정원은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다. 자연경관을 주로 삼고 인공 경물은 그저 거들 뿐이다. 사시사철 변화 없는 침엽수보다는 계절에 따라 낙엽이 지고 꽃이 피기도 하는 활엽수를 주로 사용하고, 물의 흐름을 새롭게 설계하기보다는 기존의 계류를 거의 그대로 활용한다. 지나치게 인위적인 기교는 경계하며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자 하는 철학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처럼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중시했던 옛 조상의 미적 취향을 정원 조성 방식에서 느낄 수 있다.

가장 조선다운 정원, 별서

    전통 정원에는 민간인이 조성한 정원전통 정원에는 민간인이 조성한 정원과 궁의 정원, 조선 건국 이전에 지어진 사찰 정원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중 한국적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정원이 바로 ‘별서’이다. 별서는 현대의 별장과 비슷한 개념이다. 선비들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세속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어우러져 살고자 조성했던 공간이다. 즉, 별서 조성은 은거가 그 목적이었기 때문에 마을 가까이에 위치하면서도 숲, 하천, 언덕 등을 사이에 두고 지리적으로 약간씩 격리되어 있었다.

    별서 정원의 감상 대상은 담장 안의 내부 공간뿐 아니라 외부 경관까지 포함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좀 더 포괄적인 영역을 포함한다는 의미로, 정원보다는 원림에 가까운 별서 정원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원림으로 윤선도의 보길도 부용동 원림이나 양산보의 소쇄원 원림을 들 수 있다. 두 원림 모두 조선의 3대 정원으로 불린다. 나머지 하나는 정영방의 영양 서식지로, 이들 모두 별서로서 지어진 정원이다.

    고산 윤선도는 우리나라 역사상 제일가는 정원가로 꼽힌다. 그런 그가 조성한 정원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정원이 부용동 일대에 있다. 부용동 원림에는 크게 세 공간이 있다. 윤선도가 주로 거처했던 ‘낙서재’, 풍류를 즐겼던 ‘세연지’, 그리고 도교적 세계를 나타낸 ‘동천석실’이다. 특히 부용동 원림의 입구에 위치하는 세연정은 개울을 막아 만든 정원의 가운데 있는 정자이다. 이 세연정을 기준으로 앞쪽은 자연 연못인 ‘계담’이고, 뒤쪽은 물구멍을 뚫어 만든 인공 연못 ‘회수담’이다. 이 둘을 합쳐 세연지라 부른다. 계담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유지해 빠른 유속과 동적인 경관을 살려냈고 회수담은 물의 속도를 최대한 낮추어 적막이 감도는 정적인 공간으로 꾸며냈다.

    이처럼 독특한 구조의 세연정을 중심으로 부용동을 감상할 수도 있지만, 이곳에 머물던 윤선도의 방식으로 부용동을 누려보는 것도 추천한다. 윤선도가 되어 낙서재에 앉아 사색에 빠져보는 것이다. 부용동에 막 들어선 관광객의 입장에서 겉모습이나 위치로 봤을 때 세연정이 가장 주요한 공간으로 보이지만, 사실 윤선도는 낙서재에서 주로 머물며 학문을 닦았고 필요에 따라 세연정과 동천석실을 오갔다. 낙서재에서 정적을 즐기다가, 세연정으로 나서서 노래 ‘어부사시사’를 감상하거나 윤선도가 어떻게 뱃놀이를 즐겼을지 상상해 볼 수도 있다. 동천석실에 올라서 세속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무엇일지 즐겨보는 것도 좋다.

    앞에서 말한 3대 정원 외에도, 계곡 가에 위치하며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것이 매력인 예천의 초간정이나 송암폭포 위에 정자를 둔 안동의 만휴정 등 아름다운 별서 정원이 많다. 가까운 대전 동구 가양동에도 조성 당시의 원형이 거의 보존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남간정사가 있다. 특이하게도 대청 밑으로 물이 흘러 대청에서도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과 연못을 중심으로 조성된 전경이 남간정사의 인상적인 부분이다. 대청에 앉아 자연을 느껴보고 싶다면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

전통 정원에 담겨있는 사상

    조선 시대의 전통 정원에서는 몇 가지 사상적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정원이 유학 사상과 도가 사상을 가장 핵심적인 가치로 두어 조성되었으며, 세부적인 구성에서 신선 사상과 풍수 사상의 영향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전통 정원을 감상한다면 훨씬 풍부한 감상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정원의 대표 격인 별서 정원은 유교적 생활철학을 동기로 조성되었다. 별서는 선비들이 관직을 내려놓은 후나 유배 생활 중일 때 생활하던 공간이다. 조선의 선비들이 근본으로 삼았던 이념은 유교 철학으로, 그중에서도 ‘출처지의’의 신념이 실체화된 것이 별서에서의 은거 생활이다. 출처지의란, 선비가 관직에 있을 때에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힘쓰고 자신의 이상이 세상의 벽에 부딪히면 관직에서 물러나 대의와 명분을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다시 말해, 출처지의로 대표되는 선비로서 해야 할 도리를 지키고 세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답을 추구하는 삶을 살기 위해 별서를 조성하게 된 것이다. 관직 생활이 끝난 선비들은 이렇게 별서 정원을 짓고 자연에 머물며 세속적인 욕구로부터 눈을 돌려서 근원적인 행복에 집중하고자 했다.

    한편, 외적으로는 성리학적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성리학은 우주의 생성 원리나 구조, 인간 내면의 구조, 인간사회의 법칙 등을 탐구한 학문이다. 그러다 보니 윤리나 이념 위주의 유교 사상과는 달리, 보다 형태로서 드러나는 것을 정원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외곽이 사각형인 연못 가운데에 동그란 섬을 놓은 방지원도형 연못이다. 이 연못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성리학의 우주관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상징한다. 정원 속의 경물이나 주변의 자연물에 붙여진 이름, 건축물의 이름인 당호, 편액*의 내용 등도 성리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특히 성리학을 창시한 남송의 유학자, 주자의 언행이나 사상을 많이 따르고 있다.

    도가사상, 특히 인간 중심적 가치보다 자연의 법에 따라 살아가는 ‘무위’의 삶을 추구하려는 성향도 한국 정원에 많이 드러난다. 사실 도가적 가치관은 유교나 성리학처럼 대외적으로 공유하거나 탐구하던 대상은 아니었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선비들이 추구하던 삶의 태도였다. 선비들은 자연법칙에 순응하고 고요한 자연 속에서 사색하며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흐르는 물의 방향을 억지로 바꾸지 않았고, 계절의 변화를 거스르지 않는 활엽수를 정원수로 선택하였으며, 자연의 운치를 즐기기 위해 경계 너머의 넓은 풍경을 정원 내로 끌어들였다. 즉, 정원의 중심 건물에서 주위 경관을 충분히 볼 수 있도록 시야를 고려하여 터와 건물 배치를 정했으며 담장을 짓지 않거나 낮게 지었다. 이렇게 얻은 자연의 여유로움 속에서 선비들은 자신의 이상을 추구할 수 있었다.

    도교에서 추구하는 불로불사의 경지에 오른 ‘신선’에 대한 동경도 여러 상징물로서 등장한다. 신선들이 사는 산들의 중심인 삼신산을 경물로 표현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삼신선도 혹은 삼신산이라 부르는데, 연못이나 땅에 섬이나 산의 형태로 세 개의 산을 표현하고는 한다. 경주 안압지 정원, 부여 궁남지 연못, 그리고 경복궁의 경회루 연지 등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장수를 의미하는 거북, 신선과 함께 있는 장수의 새인 학, 신선들과 함께 노니는 상상의 새 봉황 등 상징적인 형태를 가진 장식이나 돌 등이 경물로 쓰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전통 건물이 그렇듯 정원도 풍수지리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풍수 조건을 고려해서 명당인 곳을 정원의 터로 삼았으며 물길의 방향도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더 나아가 물을 그대로 방류하면 땅의 기운이 쇠할 수 있다는 풍수지리 원칙에 따라, 물이 흘러 들어오는 동쪽에 네모난 연못 등의 장치를 만들어 계류를 잠깐 멈추게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서류동입하는 물이 명당수라는 것에 착안해, 경복궁과 창덕궁의 정원에서는 인위적으로 물길을 잡기도 했다. 풍수지리를 고려하면서도 최대한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 했던 별서 정원과는 달리, 궁원의 조성에는 터가 왕조의 흥망성쇠를 결정지을 수 있음을 더욱 심각하게 여겼다.

정원에서 찾는 여유

    ‘미음완보(微吟緩步)’라는 말이 있다. 선비들이 시를 읊으며 천천히 정원을 걸었던 것을 칭하는 것이다. 느리게 걸으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기 마련이다. 한국의 전통 정원들이 선비들의 장소였던 만큼, 그들의 방식대로 관람해보는 것에 의미가 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찬찬히 정원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렇게 공간을 이해하고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정원을 조성한 사람의 의도와 가치관에 공감하고 진정으로 전통 정원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옛 조상들이 그랬듯이 현대에도 많은 사람은 정원을 원한다. 자신의 공간에 자연을 들여놓고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어 한다. 최근 유행한 플랜테리어나 실내 조경을 갖춘 카페 및 쇼핑몰 등이 등장한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일 것이다. 자연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잠시 숨 고를 틈을 만들어준다.

산책하기에 좋은 계절이 끝자락에 다다랐다. 자연이 주는 여유를 찾아 이번 가을에는 우리의 전통 정원을 방문해보면 어떨까?

 

편액(扁額)*
종이, 비단, 널빤지 따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 정자를 비롯한 정원의 건축물에도 많이 걸려 있다.

참고문헌 |
<한국정원기행>, 김종길, 미래의 창
<한국의 정원 (선비가 거닐던 세계)>, 허균, 다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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