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레싱 - <19호실로 가다>

(주)YES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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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슈와 수전은 모두의 축복 가운데 결혼했다. 두 사람은 현명하고, 분별력 있는 사람이었고, 사람들은 때때로 롤링스 부부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찾아오기도 했다. 정원이 딸린 집에서 네 아이와 함께 사는 롤링스 부부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누구라도 스스로 선택할 수만 있다면 선택하고 싶은 삶’으로 비췄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가정을 꾸린 주부였기에, 수전 역시도 자신의 현재 삶이 행복한 삶이어야만 한다고 굳게 믿었다.

    <19호실로 가다>는 200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의 초기 단편집이다. 196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한 총 11편의 단편소설은 혼란스러웠던 당시 유럽의 모습을 투영하며, 특히 당대의 이슈였던 여성 해방 운동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표제작인 <19호실로 가다> 역시, 결혼과 가정, 가부장적 질서 가운데 자신만의 공간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한 여성의 이야기를 잘 그려낸다.

    결혼 후 각자의 아파트를 포기하고 새로 신혼집을 마련할 정도로 평등한 부부 관계를 추구했던 롤링스 부부지만, 부부의 관계는 수전이 임신하고 일을 그만두면서 변곡점을 맞는다. 일을 하며 독립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던 때와는 너무도 다른 삶을 살고 있었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다시 자신만의 삶이 있는 여성으로 해방될 거라고 생각하며 수전은 하루하루를 버틴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수전의 삶은 바뀌지 않았고, 이내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시간에 그에게 주어지는 자유조차 실제로는 자유롭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는 깊은 고민 끝에 남편 매슈에게 자신의 상황을 터놓지만, 자신 역시 늦게까지 일을 하느라 자유롭지 못하다는 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수전은 어디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장소를 꿈꿨다. 그러고는 집에서 꽤 떨어진 조그마한 호텔로 향했다. 일주일에 사흘씩, 낮에만 방을 빌리겠다는 수전을 지배인은 19호실로 안내한다.

    소설 속에서 19호실은 수전이 홀로,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그곳에서의 수전은 네 아이의 어머니도, 매슈의 아내도 아니다. 매슈와 아이들의 간섭에서 벗어나 그저 충분히 쉬며, 오롯한 자신으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19호실’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정체성을 잃은 채 자신만의 공간을 갈망하는 수전의 모습은 가정, 학교, 회사 등 다양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수많은 역할과 책임감을 요구받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다. 때로 가정과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이 버겁게 느껴지는 당신을,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아닌 자신에게서 삶의 의미를 찾고픈 당신을 19호실로 초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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