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 총장이 취임 당시 밝혔던 계획들이 하나씩 현실화 되고 있다. ‘실패연구소’도 그중 하나다. 기초실험연구동(N5) 2층에는 실패연구소 간판이 올라갔고, 공개된 연구 교원 채용공고는 이슈가 되기도 했다. 막 첫발을 내딛기 시작한 실패연구소는 과연 어떤 청사진을 그리고 있을까. 이 총장과 실패연구소 노준용 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실패연구소에 관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보았다.

 

실패연구소를 짓게 된 계기는

    이 총장은 실패연구소 설립 계기를 말하며 실패를 ‘다음 성공을 위한 디딤돌’에 빗대어 설명했다. 이어 노 소장은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 등을 예시로 들며, 잘 알려진 성공 사례도 그 뒤에는 여러 번 실패하는 과정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처음 추구한 목표에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책이나 수업을 통해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것을 배우게 되고, 이것이 다음에 성공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한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비해, 우리 사회는 실패를 큰 오점으로 생각하는 성공 지향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실패를 시간이나 예산, 인생을 낭비한 것으로 쉽게 재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패 사례를 모으고 분석하여 성공으로 재해석한 뒤 구성원에게 공유하는 것이 바로 실패연구소의 역할이다. 실패연구소가 우리 학교의 문화를 바꿔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만들고, 나아가 우리 사회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이 총장과 노 소장은 내다봤다.

    이 총장은 실패연구소가 다른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 아닌 우리의 고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고유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사업임을 강조했다. 이어 노 소장은 “해외에서 기업 차원에서 실패를 장려하려는 단편적인 시도는 있었지만, 학교 차원에서 실패연구소를 육성하여 실패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세계 최초”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과감한 시도로 좋은 설계를 만들어 세계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패연구소의 구성 및 운영 계획은

    현재 실패연구소는 소장과 연구 교원 한 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컴퓨터 그래픽스를 전공한 노 소장은 문화기술대학원 Visual Media Lab에서 콘텐츠 기반 기술 개발을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 교수직과 실패연구소 소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이번 달 말부터 동참할 새로운 연구 교원은 심리학 전공으로 행정안전부에서 실패박람회를 개최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실패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을 맡을 예정이다. 아직은 시작 단계로서 작은 크기이지만, 점점 연구원 수를 늘리고 연구소의 규모를 키울 계획이다.

    또한, 실패연구소 운영위원회가 있어, 연구소의 운영에 대하여 여러 가지 조언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는 우리 학교 내부 구성원뿐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로 구성되어 있다. 과학기술부 전 차관이자 KT 이사장인 류희열 위원장을 필두로 하여, 벤처 1세대 기업인이기도 한 서강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장흥순 교수, 한국경제 안현실 논설위원, 임윤경 학생정책처장, 기계공학과 신현정 교수 등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한다.

    실패연구소는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교훈적인 실패 사례를 구성원과 공유하며, 실패 사례가 충분히 모이면 책으로 엮어 출판할 계획이다. 성공한 인사가 예전의 실패 경험을 나누는 세미나인 Leader’s Failure도 진행할 예정에 있다. 노 소장은 이 외에도 여러 구성원이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이를 포함하여 새롭게 추진할 의사도 있다고 밝혔다.

 

실패연구소 설립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실패 경험이 있다면

    이 총장은 먼저 과거 학생들과 벤처 창업을 했던 경험을 꼽았다. 현재는 당시 성공한 창업 사례들만 부각 되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실패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 번 실패했던 학생이 다음에 훨씬 잘 해내는 것을 보았다며, 실패에서 얻는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대학 시험을 재수했던 기억을 이야기했다. 쓰라리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자신을 돌아보고 겸손해질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며, 그런 실패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모습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이 총장은 최근에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학생들과의 세대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교내 힙합 동아리인 ‘구토스’에 가입하여 힙합을 배웠다. 동아리 면접을 보고, 학생들과 함께 곡과 가사를 쓰고, jtbc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힙합을 선보이는 등 이 총장의 새로운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노 소장도 대학 시험에서 낙방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결국 삼수 끝에 전혀 생각지 못했던 유학길을 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 대학에서 연이어 떨어진 후 해외 대학에 합격하면서, 어떤 기준으로 보는가에 따라 자신의 성과가 실패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친구들이 자신보다 앞서나가고 대학 생활을 즐기는 것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기억이지만, 오히려 절실히 들어간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고 했다. 노 소장은 최근 4년 동안, 학창 시절에 배우고 싶었던 방송 댄스에 도전했다. 이와 함께 나이가 들어도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을 자신의 무모하지만 가치 있는 도전으로 꼽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은

    노 소장은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의 확산과, 제도의 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밝혔다. 아직 확실하게 구상한 것은 아니지만, 창업을 하는 학생에게 실패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 교수들이 평가를 위한 단기 성과가 아닌 장기간의 혁신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게 지원하는 제도, 학교 행정에서 규정에 얽매이지 않은 융통성 있는 판단을 권장하는 정책 등을 예시로 들어 제도가 변화해야 할 방향을 설명했다. 하지만 교내 구성원들이 이런 제도 변화에 공감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문화의 변화가 먼저 필요할 것 같다는 점을 덧붙였다.

 

우리 학교 구성원에게 전하고 싶은 말

    탐욕 알고리즘(greedy algorithm)은 선택의 매 단계마다 최상의 선택지를 택하는 알고리즘이다. 하지만 이것이 최적화된 최종 결과를 도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노 소장은 “최적의 결과로 가는 과정이 최선의 길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학생들이 이를 기억하고 매번 새로운 도전을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새로 시작하는 실패연구소에 많은 관심을 가져 줄 것을 부탁하며, 실패연구소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언제든 알려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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