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었던 지난달 15일, 지구 반대편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수도 카불이 탈레반 반군에 점령되었다. 지난 7월 당시 아프가니스탄 영토의 3분의 1을 장악했던 탈레반은, 점차 세력을 넓혀 수도까지 함락시키고 아프가니스탄을 실질적으로 점령했다. 지난달 31일 미군이 철군을 완료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마침표를 찍었다. 이후 탈레반 과도 정부 하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시민들은 당장 내일에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어 불안해하고 있다. 21세기에도 해결되지 않은 분쟁,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는 수많은 난민의 거취에 대해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역사적 배경은?

    아프가니스탄은 험한 산맥과 사막으로 인한 부족 중심의 사회 구조와 동서양의 관문인 지리적 위치가 특징적이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는 강대국의 세력 다툼, 이슬람교와 소련 공산주의 세력의 충돌, 이슬람 종파 간 세력 투쟁 등 수많은 전쟁으로 채워졌다.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영국은 시장개척을 위해 인도에서 중앙아시아로 세력을 뻗쳤고, 반대로 남하하는 러시아 세력과 충돌하게 된다. 영국은 러시아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영국과 러시아의 완충지대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세 차례에 걸친 오랜 전쟁이 끝난 1919년부터, 아프가니스탄 왕국(1926~1973)은 근대화 정책과 점진적인 이슬람 개혁을 추진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1973년 왕정을 폐지하자는 쿠데타가 발생하였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끝없는 전쟁의 기나긴 암흑기로 진입한다. 쿠데타 이후 아프가니스탄 공화국(1973~1978)이 탄생하였지만, 공산주의자에 대한 탄압 정책에 반발한 공산주의자들이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1978~1992)을 수립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관습과 규율에 반대하는 공산주의 정권의 사회 개혁 정책은 지방 부족세력과 이슬람주의 세력 등 기존 기득권층의 이권을 위협했고, 이들은 무자헤딘(성전에서 싸우는 이슬람 전사)이라는 이름으로 정부군에 대항해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냉전 시대 공산정권의 영향력이 사라질 것을 염려할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견하여 정부군을 도왔고, 미국은 이에 맞서 공산주의를 공격하는 무자헤딘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다. 1989년 소련이 군대를 철수하고, 무자헤딘 정권이 자리 잡은 후에도 내부 권력 투쟁으로 인한 내전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이때 ‘이슬람법에 의해 통치되는 이슬람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새롭게 나타난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인 탈레반은 내전에 지친 민중들에게 지지를 얻어 빠른 속도로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다. 탈레반은 1996년 북부 일부 지역을 제외한 아프가니스탄에 정권을 수립하여 이슬람 근본주의에 기반한 정책을 펼친다. 그러던 2001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9.11 테러가 발생한다. 미국은 탈레반에게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9.11 테러의 배후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이슬람 무장조직인 알카에다의 축출을 요구했지만, 탈레반은 이를 거부하고 알카에다를 비호하였다. 이에 ‘테러와의 전쟁’을 내건 미국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했다. 금방 끝날 것만 같던 전쟁은, 탈레반의 게릴라전과 자살 테러 작전,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부정부패, 아프가니스탄 문화에 대한 미국의 판단 착오 등으로 인해 오랫동안 지속됐다. 20년간의 오랜 전쟁에 지치고, 원래 목적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을 성공한 미국은 탈레반과 협상 후, 서서히 군대를 완전철수하기 시작했다. 탈레반은 미군이 철수를 시작하자마자 빠른 속도로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도시들을 장악했다. 부패했던 정부군은 속절없이 무너졌고, 결국 지난달 15일 아프가니스탄 내무부가 탈레반에게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밝히면서, 아프가니스탄은 20년 만에 다시 탈레반의 나라가 되었다. 

 

2. 탈레반은 누구인가?

    파슈토어로 ‘학생들’이라는 의미의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이다. ‘학생들’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탈레반 운동에 가담한 많은 아프간인들이 파키스탄의 이슬람 신학교인 마드라사에서 교육을 받은 데 있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는 매우 추상적이므로 율법 학자에 따라 해석이 천차만별이다. 탈레반은 극단적인 해석의 샤리아와, 탈레반 출신 부족인 파슈툰족의 관습법 ‘파슈툰왈리’를 따른다. 이런 탈레반의 사상은 지나친 배타주의와 여성 차별주의로 악명이 높다. 5년의 통치기간(1996~2001) 동안, 탈레반은 엄격한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을 펼쳤다. TV와 영화, 음악, 춤은 물론이거니와 연날리기와 체스 같은 일상적인 놀이나 여가 활동 또한 제한되었다. 근대식 학교와 박물관, 극장은 폐쇄되었고, 일부 예술가들은 처형당했다. 문화유산도 파괴했는데,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 또한 탈레반의 손에 무너져내렸다. 가장 심각한 것은 여성 인권 문제이다. 파슈툰왈리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존재가 아니다. 종속적인 존재인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의 단독 외출은 금지되었다. 또한 히잡(가족이 아닌 남성 앞에서 몸을 가리기 위해 쓰이는 이슬람 종교 복장) 중에서도, 망사로 된 눈 주변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가리는 부르카가 강요되었다. 여성은 교육권과 근로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또한 여성 의사와 법률가가 없기에, 가족이 아닌 남성과의 만남이 금지되는 탈레반 통치 하의 여성에게는 의료와 법률의 권리 또한 없다.

 

3. 지금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은 지난달 17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여성이 일하고 공부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다. 이슬람 율법 아래서 여성 인권을 존중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외국 기자의 “아프간 국민이 여성 정치인에게 투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실소를 터뜨리는 장면이 보도되면서, 탈레반이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또한 정치 보복과 언론 탄압도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지방경찰청장의 처형 영상이 인터넷을 떠도는 등 탈레반의 공포 정치에 대한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이에 시민들은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카불 공항에 모였으나, 미군 철수 후 탈레반이 공항을 점거한 현재는 아프가니스탄을 떠날 방법이 없다. 탈레반에 맞서는 사람들도 있다. 북부의 판지시르 주에는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이라는 이름의 반탈레반 무장세력이 남아 있다.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 근처에서는 여성 수십 명이 여성의 일할 권리와 새 정부 참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4. ‘난민’에 관해서

    탈레반을 피해 피난길에 오른 난민이 200만 명에 달하면서 난민 관련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지난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를 겪은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난민 수용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총리가 ‘아프간인들이 오스트리아에 올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선언했고, 그리스는 터키와 맞닿은 40km의 국경에 감시카메라와 장벽을 설치하여 난민 유입을 막겠다고 공표했다. 유럽은 아프가니스탄과 가까운 터키, 파키스탄, 이란 등이 난민을 수용해주기를 원하지만, 이미 수십만 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있는 터키는 ‘유럽을 위해 단 한 명의 아프간 난민도 떠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과 연합국은 자국을 돕거나 같이 일했던 협력자들 일부를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현지인 직원 및 가족 378명을 국내로 수송했다. 이들은 난민이 아닌 특별기여자 신분으로, 한국에 정착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하지만 미국과 연합국이 받아들이는 협력자들의 수는 몇 만 명 정도로, 전체 난민의 수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한편, 이슬람 문화에 대한 거부감과 경제적 문제, 테러와 폭동에 대한 공포로 인해, 벌써부터 난민 수용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한 국가의 갈등은 필연적으로 다른 국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7,000km가 넘는 거리를 필사적으로 이동하고 비행기 끝에라도 매달리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의 목숨을 건 이민은 이미 시작되었다. 난민 수용의 부작용보다, 성공적인 난민 수용과 정착 방안에 대한 고민이 시급히 필요한 상황이다.

※ 본 기사는 인문사회과학부 강경란 교수의 검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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