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감정은 공포이다. 인간은 늘 삶의 불확실성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을 지녀왔기 때문이다. 공포 영화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며 우리의 무의식에 잠들어 있는 진실을 직면하게 한다. 때로는 개인의 감정을 넘어서 당시 사회문화적으로 억압되었던 가치를 귀신, 괴물, 살인마 등 왜곡된 방식으로 표현한다. 이 기사에서는 공포 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살펴보고, 한국의 공포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두려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공포 영화란?

    ‘관객으로 하여금 두렵고 무서운 느낌이 들도록 의도한 영화.’ 사전적 정의에서 볼 수 있듯, 공포 영화는 장르 영화 중 가장 뚜렷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목적 자체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명작이어도 모든 사람의 찬사를 받기 힘들며 영화사적으로도 대중적인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말초적인 쾌락을 쫓고 어둡고 잔인한 장면이 불쾌감을 준다며 영화 시장에서 푸대접을 받고는 했다. <고어 영화>라는 책의 역자는 한 학생이 “공포를 좋아하는 데에는 많은 변명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리포트를 썼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포 영화는 마니아층의 흔들림 없는 사랑을 받으며 타 장르와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세계를 일구어냈다. 충격적인 공포와 전율에 주안점을 둔 호러 영화, 살인과 범죄를 소재로 한 스플래터 영화, 초자연적 경험을 소재로 한 오컬트 영화, 이 밖에도 수많은 가지가 공포 영화라는 범주에서 뻗어 나온다. 장르 특성상 사건과 인물에 대한 구조적인 제약이 없어 다양한 변주를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니아층의 까다로운 입맛 역시 다양한 공포 세계의 구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간의 공포는 대부분 무지(無知)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새롭지 않은 공포 영화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공포, 사회를 비추는 거울

    프로이트는 공포가 개인의 무의식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개인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자기의 본능을 억누르는 과정에서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두려움이 괴물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트라우마는 공포 영화라는 거울을 통해 그 모습을 비추곤 한다. 1950년대에 만연하던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돈 시겔의 <신체 강탈자의 침입>으로 표출되고, 베트남 전쟁으로부터 비롯된 신체 훼손의 공포가 <텍사스 전기톱 학살>에서 나타난 것처럼 공포 영화를 보면 그 시대에 사회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공식은 성립한다. <연가시>(2012), <감기>(2013)와 같은 영화에서 2009년에 유행한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를 목격할 수 있다. 또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제작된 <판도라>는 원전 사고에 대한 두려움을 담고 있다.

한국 공포 영화의 흐름

    전통적인 한국 공포 영화의 특징은 귀신, 괴물, 악인으로 대표되는 것들이 사연을 갖는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공포 영화는 절대적인 악(惡)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이유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특징이다. 그에 반해 한국의 공포 영화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어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포 영화인 <장화홍련전>(1924)은 계모에게 죽임을 당한 딸들의 복수극으로 여성 귀신이 주인공이 되는 한국 초기 공포 영화의 전신이 되는 작품이다. 이후 1970년대까지 이어지는 한국의 공포 영화는 대부분 귀신의 악행, 억울한 사연 파악, 가해자 처벌의 메커니즘을 따르며 일종의 복수극과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1980년대에 다양한 장르의 영화 제작 경험이 있는 베테랑 감독들이 공포 영화에 도전하면서 한국 공포 영화는 더욱더 다채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박운교 감독은 <망령의 한>(1980), <망령의 웨딩드레스>(1981)에서 기존의 여성 귀신 서사에 색다른 스토리를 더해 가부장제 사회와 군사정권의 도덕성을 비판한다. 그 밖에도 이혁수 감독의 <여곡성>(1986), 고영남 감독의 <깊은 밤 갑자기>(1981)는 왜곡된 심리 묘사와 가족의 붕괴를 주제로 큰 성공을 거두며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작품이 되었다. 1998년 개봉한 박기형 감독의 <여고괴담>을 시작으로 한국의 공포 영화는 더는 인과응보 서사에 머무르지 않게 되었다. 해외의 공포 영화처럼 사연이 부재한 절대 악이 등장하기도 하고 오컬트, 좀비, 슬래셔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기존의 한국형 공포 관습에서 벗어나 다양한 변주를 시도했다. 다양한 공포 영화의 등장은 한국 사회가 다층적이고 복잡하게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고괴담>에서 <고死:피의 중간고사>까지

    학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을씨년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모두 같은 옷에 같은 머리를 한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여있는 것이 어딘가 괴기스럽기도 하고 건물 자체도 위압적인 교도소와 비슷한 외관을 가졌기 때문이다. 1998년 <여고괴담>이 개봉하던 시절에는 공포스러운 외형에 교사의 폭언과 물리적 폭력까지 더해졌다. 교사의 우월한 지위에 억눌린 채 그 시절을 겪은 사람들은 말한다. 교사들 대신 귀신이라도 돌아다녔다면 차라리 즐거웠을 것 같다고. 여고괴담은 성적 비리, 학교 폭력, 교사의 폭행 및 성추행 등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비상식적인 사건이 벌어지던 1990년대 한국의 교육 현실을 꼬집는다.

    학교 내의 체벌이 거의 사라진 후에도, 학교를 공포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은 멈추지 않는다. 기이한 획일성과 거기서 벗어나면 안된다는 두려움은 학생들을 학교라는 전쟁터로 내몰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학생을 대상으로 2017년에 실시된 조사에서 ‘고등학교가 어떤 이미지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80.8%가 ‘사활을 건 전장’이라고 답했다. <고死:피의 중간고사>의 살인게임 이면에는 과열된 성적 경쟁으로 인한 비극이 내재되어 있다. 학생들은 경쟁에서 뒤쳐지면 안된다는 압박감에 시험지를 빼돌리고 친구들을 죽이기까지 한다. 2018년 발생했던 시험지 유출 사건은 영화에서 표현된 현실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방증한다.


전쟁의 트라우마, 알포인트

    전쟁을 겪은 군인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고 해도 끔찍한 기억을 잊지 못하고 쉽게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알포인트>는 귀신을 주제로 한 공포 영화 같지만 사실상 극한 상황을 겪은 인간이 무너지는 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 군대는 전쟁을 준비하고 살인을 수행하는 합법적인 무력집단이다.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때로는 개인이 희생당하거나 불합리한 선택을 강요받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수많은 전쟁의 아픔을 겪어왔다. 전쟁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군인뿐만 아니라 가족을 잃은 유족, 삶의 터전을 잃은 토착민 등 세대 전반이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또한 역사의 기록과 우리 삶에 남은 전쟁의 흔적을 통해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 역시 강도는 약할지라도 그 공포를 공유한다. 기억에 새겨져 공유되는 전쟁과 군대의 트라우마는 <알포인트>의 공포스러운 상황을 언젠가 겪은 장면처럼 생생하게 다가오게 한다.

한국형 오컬트, 곡성

    오컬트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을 뜻하는 말로, 1973년 개봉한 <엑소시스트>로 대표되는 공포 장르다. 대개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악마와 대결하는 퇴마의식이 내용의 주를 이루기 때문에 악마의 존재에 공감하기 어려운 한국 정서상 오컬트 장르는 국내에서 크게 환영받지 못해 왔다. 하지만 최근 <검은 사제들>, <곡성>, <사바하>가 연이어 흥행하며 한국형 오컬트 장르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불모지와 같았던 한국 영화계에서 오컬트가 자리 잡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우리 사회에 불신이 뿌리 깊게 내렸기 때문이다. 기존 공포 장르는 권선징악의 규칙을 충실히 따라왔기 때문에 자신이 악한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처벌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곡성>에는 권선징악의 개념이 없어 운이 나쁘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일정한 대상 없이 무작위로 살인을 저지르는 ‘묻지마 살인마’의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관객은 오컬트의 ‘절대 악’ 개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악의 존재뿐만 아니라 악마에 현혹되는 인간의 모습에 집중한다. 악마를 물리치기 위한 퇴마 의식에서도 한국형 오컬트만의 독특한 점이 드러난다. 기존의 기독교 중심 세계관에서 벗어나 무속신앙, 불교를 기반으로 천주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무속신앙의 서낭신과 가톨릭 신부가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딸을 지키려는 주인공을 혼란스럽게 한다. 현대 사회에서 ‘믿음’의 의미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벗어날 수 없는 계층의 비극, 기생충

    <기생충>의 장르를 무엇으로 정해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몇 개의 공포 장면이 영화의 핵심적인 주제 의식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공포 장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영화 초반부 김 씨네 가족이 박 사장의 집에 차례대로 입성하는 블랙코미디 속에서 불안하게 유지되던 긴장감은 문광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관객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근세를 은밀히 숨겨둔 지하 창고의 검은 입구부터 가파른 계단을 지나 근세에게 도달하기까지의 속도감 있는 시퀀스는 단꿈에 취해 있던 김 씨네 가족에게 그들 앞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문광 부부와의 소동 이후 박 사장네 부부가 집에 돌아오면서부터 긴장감은 극에 달한다. 연교와 박 사장이 스킨십을 나누는 거실 소파 밑에 숨어 있는 기택 가족의 모습과 이후 오수조차 역류하는 반지하 집으로 끝없이 하강하는 장면은 두 가족 사이의 계층 차이를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다음날 다송이의 생일 파티에서 근세가 기정을 죽이고, 그런 근세를 충숙이 죽이고, 기택이 박 사장을 죽이는 난투극은 계급적 콤플렉스가 분노로 표출되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적 양극화는 더 견고해지고 있으며 계층 차이는 삶의 전반에 영향을 준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전 세계가 빈부격차의 늪에 빨려들고 있다. <기생충>이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영화적 완성도뿐만 아니라 누구든 공감하는 문제를 보다 사실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역사가 시작되고 오늘날까지 공포 영화가 메이저한 영화 세계를 대표한 적은 없지만, 가장 다양한 세계를 대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을 순수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면서 말이다. 공포 영화를 즐기는 영화 팬이라면, 잠재된 사회문화적 맥락을 해석함으로써 공포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공포영화, 한국 사회의 거울>, 오세섬, 커뮤니케이션북스
CAST(캐스트) 5호: Horror(공포영화 특집호), CAST 편집부,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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