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로워리 - <그린 나이트>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모인 크리스마스이브 연회장에 나무의 형상을 한 녹색 기사가 불쑥 찾아와서 게임을 제안한다. 다음 크리스마스 전까지 녹색 예배당을 찾아와 자신의 일격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규칙의 목 베기 게임. 목숨이 걸린 규칙 때문에 전설과도 같은 원탁의 기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지만,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은 선뜻 아서왕의 칼을 빌려 녹색 기사의 목을 내리친다. 가웨인의 일격으로 목이 잘린 녹색 기사는 바닥에 떨어진 머리를 들어 올려 1년 뒤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사라진다. 가웨인은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에게 박수받고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이 일화가 여느 중세기사의 용맹한 무용담과 달리 특이한 이유는 그의 모험담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녹색 기사의 목을 베고 1년 후, 가웨인의 여정은 시작된다.
J.R. 톨킨의 소설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를 영화화한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은 원전을 과감하게 해체하고 새롭게 조립하여 관객 앞에 펼쳐낸다. 기사의 용맹함을 노래하는 기존 영웅 서사와 달리 가웨인은 온갖 유혹과 고난 앞에서 거듭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세 신화를 바탕으로 화려한 액션과 경관을 보여줄 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겨 나가고, 개인의 불완전한 내면을 깊이 있게 파고들며 자아와 욕망 사이의 갈등에 주목한다. <그린 나이트>가 중세 판타지로서의 매력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에 밀접하게 파고드는 힘을 가진 이유다.

    예배당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친절을 강요한 소년은 가웨인의 모든 것을 (녹색 기사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녹색 허리띠까지) 약탈해 간다. 죽음 끝에서 간신히 살아나 목이 없는 소녀 위니프레드를 만나지만, 머리를 찾아달라는 소녀의 말에 대가가 있냐고 되묻는 장면은 그가 도덕적으로 실패했으며 기사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성주와 귀부인의 집에 머무는 에피소드에서 성주가 제안한 ‘신의와 우정의 거래’를 지키지 못하며 그의 도덕적 실패는 배가된다. 원전에서 비롯된 다양한 상징의 이미지는 가웨인의 실패뿐인 여정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입는다. 녹색 기사와 여우의 정체, 녹색 허리띠의 의미 등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다층적인 상징을 해석하다 보면, 중세 신화를 다양하고 현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막바지에 이르러 녹색 예배당에 도달한 가웨인은 두려움에 떨며 약속된 도끼질 앞에서 거듭 주춤한다. 이어지는 플래시백은 가웨인이 약속을 어기고 녹색 기사에게서 달아나 왕으로서 호화로운 삶을 향유하다가 종국에는 머리가 잘려 죽는 결말을 비추어 관객에게 질문한다. 모든 일의 끝이 허망한 죽음뿐이라면, 당장의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할 것인지, 혹은 얼마 안 되는 삶일지라도 목이 떨어질 날을 기다리며 살아낼 것인지.

    <그린 나이트>의 환상적인 영상미 역시 주목할 만하다. 관객이 가웨인에 이입해 삶에 대한 욕망과 기사로서의 소명 사이에서 갈등하는 동안, 영화는 신비로운 이미지를 통해 황홀한 시각적 체험을 선사한다. 약탈꾼이 가웨인을 묶은 채 숲에 버려둔 장면에서 시간의 경과는 360도 패닝숏(카메라가 이동하면서 촬영한 장면)으로 표현되고, 카메라가 한 바퀴를 돌고 돌아왔을 때 가웨인은 백골의 모습으로 변한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가웨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마을에서 상연되던 인형극의 구성을 따른다. 시간의 흐름과 차원 간의 이동을 표현한 연출 방식과 더불어 영화에 환상적인 이미지를 더하는 거인족, 모험에 동행하는 여우, 그리고 압도적인 자연의 모습까지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이 구축한 독보적인 예술성은 관객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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