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학부로 복수 전공에 도전해서 한 학기가 지나고 여름방학이 되었을 때였다. 곧 성적이 게시되었고, 주 전공 학점도 복수 전공 학점도 마음에 차지 않았다. 스스로 너무 호기롭게 의욕만 앞섰나 싶었고, 노력이 부족했다는 자책이 마음에 꿈틀대던 참이었다. 공교롭게 코로나로 혼란스러운 학기이기도 했으며 진로도 불투명한 느낌에 속이 턱 막혔다. 이럴 때는 아무것도 안 챙기고 무작정 나가서 따릉이에 올라 페달을 밟는다. 한창 바쁜 생각을 떨치려 애쓰며 달리다 보니 점심때를 놓쳐 배가 고파졌다. 잠깐 멈추고 풍경을 보며 쉬면서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순간적으로 퍼뜩 자연스럽게 들었던 생각인데, 왠지 모르게 억울했다. 그 억울함은 다름 아닌 내 마음이 보낸 신호였다. 

    내가 배고픔 직후에 바로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몸에 삼시 세끼를 꾸준히 먹여줘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흔히 밥 챙겨 먹기가 제일 귀찮다는 말도 하고, 전업주부의 주된 업무가 아이들 밥 차려 먹이기이기도 한 것처럼 밥 먹기를 삶에서 망각할 수가 없듯이 말이다. 그러나, 신체적인 에너지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에너지도 소진되고, 때마다 공급해줘야 한다는 것은 잘 잊어버리는 듯하다. 밥때가 되었으니 무언가 먹어야겠다는 일견 아무 문제없이 자연스럽게 흘렀던 생각에 억울함이 느껴졌던 것은 자책과 부담 등에 고단해졌던 마음의, 자기도 챙기고 돌보아달라는 보챔이 아니었을까? 

    지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영양도 챙겨줘야 한다. 오늘 힘들었고 내일도 다음 주도 힘든 일이 있다면, 아주 잠시라도 내가 만족감이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해보자. 일종의 에너지 마련책인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가 즐거워서 하는 것들이 나의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경험들이다. 나에게 주어진 책임이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하는 활동들 말고, 순전히 나의 즐거움을 위해 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나의 소중한 삶을 위해 필요한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어떤 순간이 내게 의미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나의 경우에는 자전거 타기, 내 어릴 적 사진 보기, 문구점 구경하기, 하늘 보기, 그림일기 적기, 여행 가고 싶은 곳의 구글 스트리트 뷰 보기 등이 있다. 

    긍정 심리학에 관련한 책에서 다음의 내용을 보았다. 부정 정서를 경험한 후 무조건 일정 정도의 긍정 정서를 경험하여야 부정적인 감정이 희석되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책을 읽으며 다음 구절을 예상하기 마련이다. 나는 적당히 부정 대 긍정이 일 대 일이겠거니 하고 읽다가, 최소 3회 이상의 긍정 경험을 하여야 부정 감정이 사라질 수 있다는 다음 내용에 아차 싶었다. 나를 지치게 만들고 부담이 되어 발목을 잡아끄는 부정 감정을 없애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즐거움으로 만회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떤 순간과 활동이 내게 의미 있는지 또 진정한 즐거움을 주는지 알고, 더 나아가 의식적으로 끼니를 챙겨 먹듯 충전을 해줘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이상은의 노래 중에 ‘비밀의 화원’이라는 곡이 있다. 향기 나는 연필로 쓴 일기처럼, 아침 하늘빛의 민트향 새 샴푸를 사러 가야지, 등 굉장히 일상적이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노랫말이 인상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울함에 빠진 후배를 위해 만든 곡이라고 한다. 에너지가 바닥을 치기 전에, 숨이 턱까지 차고 힘이 들 때면 더는 지체하지 말고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즐겁고 의미 있는 에너지 사탕을 먹여주자. 다른 누가 아닌 나만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다. 위의 노래 가사처럼 일상적인 아주 사소한 즐거움이라도 좋다. 나 자신에게 온기를 전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을 써보자. 뒤뜰에 살랑거리는 꽃들처럼 경직되지 않은, 위축되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싶은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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