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올해도 반을 훌쩍 넘어 하루에 샤워를 두, 세 번 하게 만들던 무더위도 어느 정도 가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곧 또 겨울이 오겠죠. 왜인지 겨울은 항상 기다려졌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아니면서도 겨울만 되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습니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신 것도, 포장마차에서 가족이 다 같이 덜덜 떨면서 우동을 먹은 것도,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걸은 것도, 학교 축제의 설레는 마음도, 새 학기의 떨림도, 뼛속까지 시려오는 차가운 바람을 맞다 보면 정신이 바짝 차려지기 때문일까요? 다른 계절의 어떤 마음들보다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겨울’ 하면 떠오르는 강렬한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그날은 아무 날도 아니었습니다. 수능을 며칠 앞둔 고삼의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여느 날처럼 아빠가 이른 출근길에 운전기사를 자처하시며 학교로 데려다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꺼내놓지 않는 이상 눈을 씻고 봐도 애정이란 없는, 경상도 그 자체의 부녀지간이었지만 일 년 동안 출근 메이트를 하다 보니 적당한 온도의 대화가 가능해졌습니다.

    아침에 먹은 빵의 맛에 대한 이야기, 공부가 하기 싫다는 투정, 제일 친한 친구들의 입시 현황 (아빠는 누가 누군지 여전히 모르는 듯 했지만, 열심히 끄덕거려 주셨습니다.)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 문뜩 바라본 창밖에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들이 줄줄이 서서 바람을 맞고 있었습니다.

    “뭔데. 벌써 겨울이가? 
    와- 작년 겨울에 진짜 좋았는데.”

    속으로 작년 겨울에 좋았던 일, 재작년 겨울에 좋았던 일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려던 찰나, 아빠가 무심한 말투로 툭 하고 문장 하나를 뱉었습니다.

    “다가올 겨울은 더 좋을 거야.”

    글쎄요. 그 잠도 덜 깬 아침에 뭐가 그렇게 사무쳤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빠 앞에서는 꾹 참고 있다가 아무도 없는 자습실에서 아침 자습 시간 내내 펑펑 울었습니다. 겨울에 대한, 그 기억들에 대한 제 감정을 하나씩 꺼내서 봤습니다. 아무도 보관하고 있지 않을 내 작고 소중한 추억들에 대한 미련, 떠나버리고 지나버린 사람들과 시간에 대한 서운함, 그리고 이보다 더 좋은 기억이 앞으로 다시는 없을 거라는 일종의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나간 겨울들을 붙잡고 놓아줄 줄 몰랐습니다. 더는 산타가 오지 않는 크리스마스도, 설렘을 주던 그 사람도 없는 새로운 겨울을 맞이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근데 아빠 말이 맞습니다. 지나간 겨울은 이미 지나서 바꿀 수 없지만, 앞으로의 겨울은 얼마든지 좋을 수 있습니다. 한참을 울고 나니 미래를 기대할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났고 미래는 얼마든지 좋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지금도 겨울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건 단지 여름의 땀 흘린 내 모습보다 뽀송뽀송한 내가 더 좋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다가올 겨울은 더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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