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하면 약속 시각에 늦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집 밖을 나섰습니다. 집 밖을 나서자 뭔가 허전한 느낌이 저를 엄습합니다. 아차, 마스크를 쓰는 걸 잊었습니다. 행여 누굴 마주칠세라 후다닥 집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놓은 지도 벌써 1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텅 빈 거리, 마스크를 쓴 사람들, 불 꺼진 도심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의 일상이 어떠했는가 하는 기억조차 희미해지는 가운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슬픈 하루입니다.

    지난해 3월, 대구광역시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던 때의 일입니다. ‘대구 봉쇄’를 두고 친구와 반나절 넘게 논쟁한 적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쟁점이 있었지만 결국 핵심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을 바라보는 관점’이었고, 이를 바라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매우 다양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어느 쪽이든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촉즉발의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자국민의 시민의식에 모든 것을 걸 순 없듯이, 국가가 대내외 정세를 핑계 삼아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도 용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적절한 선’이라는 건 주어진 정답이 있다기보단, 우리에게 닥친 위기의 종류와 심각성에 따라 그때그때 가치 판단을 통해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요?

    그럼에도 강제성을 띠는 정부나 지자체의 행정명령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코로나19의 유행이 장기화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행정명령이 국민의 기본권을 필요 이상으로 침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또는 특정 집단에 과도한 희생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더 좋은 방법은 없는지 하는 질문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재난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집회에 유독 더 강한 인원 규제를 적용하는 현 거리두기 체제에서 집회의 자유가 절실한 사람은 누구인지, 영업 제한 행정명령으로 고통받는 이들은 누구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저지하면서도 국민의 기본권 제한을 최소화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법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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