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매력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겪어 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얼음으로 뒤덮인 아렌델 왕국이나 나비족이 사는 판도라 행성에도 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화가 항상 즐거운 경험만 선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할 아픔과 분노까지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힘일 것입니다. 제게는 <사마에게>가 그런 잊지 못할 슬픔을 준 작품에 속합니다.

    <사마에게>는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시리아 알레포에 살며 자유를 꿈꾸는 와드 알-카팁 감독이 그녀의 딸 사마에게 바치는 메시지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전쟁의 참상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는 이전에도 많았지만, <사마에게>는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담았기 때문에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사마에게>가 더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비극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리아 내전뿐만 아니라 몇 달 전까지 국제 뉴스 대부분을 차지했던 미얀마 쿠데타, 자치권을 잃은 홍콩, 무장단체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의 상황까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지난달 27일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연말까지 최대 50만 명 넘게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국제 사회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국내 여론은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 청원에 “난민 받지 말아 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에 작성 일자 기준 28,432명이 동의했습니다. “아프간 난민들에게 국경을 열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에 1,136명이 서명한 것과 비교하면 약 25배의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이 수치가 여론을 정확하게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국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여론은 난민 수용에 부정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사마에게>는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을 담은 위르겐 힌츠페터의 영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한국의 상황을 국제 사회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취재를 이어나갔습니다. 한국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강의 기적’ 역시 외국으로부터의 원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국제 사회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의 안락한 일상을 누릴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이방인에 대한 막연한 혐오를 멈추고, 우리 사회가 받은 도움을 행동으로 돌려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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