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펫졸드 - <피닉스>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사랑하는 남편조차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남편은 나에게 죽은 아내를 사칭해 유산 상속을 도와달라 청하고 그렇게 거짓 연극이 시작된다.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서 기적으로 살아남은 유대인 가수 넬리는 얼굴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로 독일 국경에 들어선다. 곁에서 성형 수술과 회복을 도운 친구 레네는 새로운 삶을 찾아 독일을 떠나자고 얘기하지만, 넬리는 사랑하는 남편 조니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다. 그녀는 위험한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끈질기게 조니를 찾고 결국 나이트클럽 ‘피닉스’에서 일하고 있는 그와 재회한다. 힘들게 찾은 조니를 불러보아도 그는 눈앞에 있는 넬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레네는 조니가 그녀를 밀고한 배신자일지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예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넬리는 자기 자신을 연기하라는 조니의 기묘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작년에 개봉한 <트랜짓>과 <운디네>로 우리나라 영화팬의 주목을 받고 있는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은 2014년작 <피닉스>를 통해 세 번째로 한국의 관객에게 그의 작품을 선보이게 되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모습을 탁월하게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피해자들과 비겁하게 살아남은 위선자 사이의 서늘한 간극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영화에서 조니는 넬리에게 아내가 즐겨 입던 붉은 원피스를 입고 사람들 앞에 나타날 것을 강요한다. 넬리는 수용소에서 돌아온 사람이 화려한 모습을 하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반박하며 수용소에서 겪은 경험을 말해준다. 감시원들에게 둘러싸여 벌거벗은 채 수용소에 막 도착한 사람들의 옷을 조사하는 일을 하는 도중, 어머니의 옷을 입은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노라고. 이 고백을 통해 과거에 붉은 원피스를 입던 모습과 수용소에서 벌거벗겨진 모습이 대비되며 관객은 넬리가 이전의 삶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조니와 친구들이 그리워하는 넬리는 참혹한 피해자의 모습이 아닌, 과거의 화려한 허상이기 때문이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조니가 정말 넬리를 배신했는지에 대한 의심이 팽팽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영화는 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내놓거나 조니의 과거를 파헤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크리스티안 펫졸드는 이렇게 답했다. “조니가 원래 악한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부분은 나치의 만행을 묵인하고 외면한 것, 그리고 사랑을 파괴한 것이다.”

    넬리는 마침내 예전의 모습으로 남겨진 사람들을 만난다. 참극을 잊은 듯이 해맑은 그들 사이에서 어색함을 느끼던 넬리는 <Speak Low>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 순간, 조니는 넬리의 팔에 새겨진 수감번호를 발견하고 그녀가 진짜 넬리임을 깨닫는다. 노래를 마친 그녀는 굳은 표정을 한 조니와 관객들을 남겨둔 채 퇴장함으로써 연극을 끝마친다. 불사조 같은 그녀의 모습을 통해 감독은 관객들에게 말한다. 겉모습을 회복하더라도 그녀의 팔에 새겨진 수감번호를 지울 수 없듯, 역사적 비극과 피해자들의 고통은 지울 수 없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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