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 <부지런한 사랑>

    모든 것이 빠르게 달려가는 세상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거나 지쳐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순간이 생긴다. 이럴 때 건네는 심심한 위로 같은 책이 있다. 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이다. 그리고 이 책의 부제는 ‘몸과 마음을 탐구하는 이슬아 글방’이다.

    2014년 봄, 막 스물세 살이 된 작가는 카페 아르바이트만으로는 월세를 감당하기 벅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아파트 단지에 전단을 붙이며 자신을 스스로 글쓰기 작가에 임명한다. 전공은 신문방송학이고 가르치는 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지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고 사랑하는 글쓰기 선생들에게 배운 10대의 기억이 있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불러 주는 초등학생들을 위해 서울과 여수로 동분서주했다. 대안 학교의 교실에서는 비밀이 많아진 청소년들을 만났다. 글쓰기 모임에서 어머니뻘인 어른 여자들의 글과 인생을 엿보았다. 코로나 시대에는 돌봄이 필요한 동네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그렇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작가는 자신이 더 많이 배웠다고 말한다.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자신이 쓴 일기를 정성껏 읽고 일기보다 긴 코멘트를 적어주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시작했음을 고백한다. 솔직해질 용기와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알려 준 그 선생님처럼, 작가 또한 아이들의 글에 귀를 기울인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준비를 마쳤을 때, 아이들의 글에서는 훨씬 큰 세계가 열린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그 애에 관한 온갖 상상에 빠져 단물에 절어 있었는데 이제는 마치 티백처럼 손쉽게 건져진 뒤 물기를 쫙 빼서 곶감처럼 말려진 느낌이었다.’ 순수하고 맑은 시선과 꾸밈없는 호기심이 있다. 작가는 학생들의 글에서 다양한 순간들을 발견한다. 나만의 글투가 생기는 순간, 글의 주어가 타인으로 바뀌는 순간, 새로운 감정을 배우는 순간, 세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럴 때마다, 각기 다른 모습의 학생들에게 각기 다른 사랑과 관심을 전해주는 작가의 코멘트를 읽으며 누군가에게 세심하게 사랑받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선생님께 ‘황홀하다’, ‘유일무이하고 사랑스럽다’, ‘잘 달리는 사람이 잘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라는 말을 들은 아이들에게는 어떤 칭찬의 싹이 자랄까 궁금해진다.

    처음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일간 이슬아를 발행하고 일인 출판사를 세우고 누드모델을 하고 글방을 운영하는 작가의 단단함이 어디서 오는지 의문이었다. 책을 읽은 뒤, 그것이 글쓰기를 통해 얻은 일종의 체력 덕이라고 짐작하게 되었다.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게으르고 이기적인 우리가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스스로에게 갇히지 않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글을 쓰는 사이 우리에게는 부지런히 쓸 체력과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이 생긴다고, 그리고 그 부드러운 체력이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세계를 수호한다’고 그는 믿는다. ‘재능과 반복’이라는 꼭지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 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작가가 말하는 꾸준함은 스스로를 향한 부지런한 사랑의 다른 말이라고 느껴진다. 책을 읽은 후, 아이들의 글이 반짝반짝 빛나던 순간 작가가 아이들에게 건넨 최고의 칭찬 ‘너는 커서 네가 될 거야. 아마도 최대한의 너일 거야.’를 기억하며, 나 또한 나 자신에게 부지런한 사람이 될 것을 다짐하게 된다. 그리고 학기가 시작되면 바쁜 삶을 부지런히 채워나가기보다 급히 헤쳐나가기에 여념이 없을 학우들에게도 이 책을 통한 마음의 재정비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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