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지나고 창백한 푸른 점의 유일한 시종이 그 표정을 바꾸듯이 당신의 책장도 끊임없이 다른 미소를 띄울 테지요. 하지만 나의 책장 한 켠에는 늘 변하지 않는 보조개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광활한 바다를 처음으로 마주한 어느 아이의 설렘이, 계절을 걷지 못하는 어느 청년의 애태움이, 평생의 인연과 사별한 어느 노인의 회한이 적셔져 있습니다.

    아이는 바람이 선선한 하루의 스무여섯번째 시간, 산으로 둘러싸인 어느 교외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를 마주한 아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에게 물었습니다.
    “저 바다 너머에는 무엇이 있나요? 배를 타고 저 너머로 나가보고 싶어요.”
    나는 대답했습니다.
    “수평선 너머에는 무한한 협곡이 있어. 그리고 그 곳에는 사람의 영혼을 빨아먹는 악마가 살고 있단다. 너는 악마와 싸워 이길 수 없어. 너는 이 항구에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서는 안돼.”

    아이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러나 내일의 해가 뜨던 무렵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 보다 정확히 말하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의 몸뚱아리보다 큰 노를 저어 수평선으로 나아가던 그 아이의 기백이었습니다.

    청년은 북두칠성이 비추던 어느 자정, 당신의 루시드 드림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북두칠성보다 문명의 휴지 조각들을 더 사랑했던 그는 <웨스트에그의 트리말키오>라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헐뜯고 비난하기를 좋아하던 나를 보며 청년은 줄곧 말했습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어질 때에는 이 말을 명심하세요. 세상 모두가 당신과 같이 혜택을 받고 살아온 것은 아니랍니다.”

    나는 심연 속에서도 내일을 반기는 특별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그 청년을 존경했습니다. 그런 그가 일곱의 파군성을 숭배하게 된 것은 여름이었습니다. 지난 겨울은 유달리 추웠고, 따라서 여름은 유달리 더웠습니다.

    계절을 걷지 못하는 청년을 보며 나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내려가면서도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그러나 나의 조언이 무용했던 것은 청년이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 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던 까닭입니다.

    노인은 햇볕 드는 날 당신의 무덤에서 태어났습니다. 나는 노인에게 인생의 회한을 물었습니다. 완벽한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캔버스를 가진 화가라네. 자네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해봐. 오늘따라 자네가 그린 스케치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저 찢어내어 던져버리는 일, 얼마나 쉬운 일인가.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사람은 오래 전에 버려진 밑그림을 주섬주섬 꺼내 한참을 바라보고 이내 아름다운 물감으로 덧칠할 수 있는 사람이라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지만, 젊은 자네는 언젠가 그러한 날이 오지 않겠나.”

    아이는 내가 되었고, 청년은 내가 되었으며, 노인은 내가 되었습니다. 오후 아홉을 알리는 제야의 종이 울리던 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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