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구의역에서 홀로 안전문(스크린도어)을 수리하던 용역업체 직원 김 모 씨가 달려오던 열차와 안전문 사이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고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저는, 이 사고를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가’를 일깨워준 사고로 기억합니다. 누군가는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위험한 작업 현장에 혼자 내몰려야 했고, 하청 업체의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계약을 그대로 따라야 했습니다. 심지어 죽음조차도, 그리고 죽음 이후의 대우도 가진 것이 없는 이들에게는 더 가혹하다는 것을 5년 전 구의역 참사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맡은 그였지만, 정작 그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기형적인 시스템은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이 사고는 원청인 서울메트로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하청 업체를 사용하여 안전 확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을 확보하지 않았고, 서울메트로와 하청인 은성PSD 사이에 ‘고장 접수 1시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해서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는 무리한 계약이 있었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했습니다. 사고가 있었던 그 날도 김 군은 서로 다른 두 역에서 고장 신고가 접수된 상황에서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홀로 위험한 작업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당시 서울메트로는 사고에 대해 2인 1조 규정을 어긴 피해자의 과실이라며 자신들의 책임을 떠넘기는 데 급급했습니다.

    시민들은 한 청년을 죽음으로 내몬 사회구조에 분노했고, 자신과 무관하지 않은 사고라며 함께 슬퍼했습니다. 사고가 있었던 안전문에 적힌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는 나다’라는 문구는 그렇게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났습니다. 같은 사고를 막겠다며 당시 국회에서 발의된 수많은 법안 중 통과된 법안은 사실상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유일합니다. 그마저도 사고 발생 2년 후, 태안화력발전소 사고로 또 다른 청년 김용균 씨가 사망한 후에야 힘겹게 통과됐습니다.

    최근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산업재해로 인한 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을 듣습니다. 지난 4월 22일에는 이선호 씨가 평택항 부두에서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몸이 깔려 숨지는 사고가 있었고, 지난달 8일에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40대 하청 업체 노동자가 안전장치 미흡으로 작업 중 추락사했습니다. 26일에는 한 화물차 기사가 안전조치 없이 자신의 업무가 아닌 하역 작업을 하다가 파지 더미에 깔려 사고 하루 만에 숨졌습니다.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2020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2,062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습니다. 매일 평균 6명의 노동자가 작업 중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사망하는 셈입니다. 너무도 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기에, 어쩌면 한국 사회는 노동자의 죽음에 무감각해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일터에 나간 노동자가 안전히 집에 돌아올 수 있는 사회, 노동자의 죽음을 추모할 일이 없는 세상이 오면 좋겠습니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김신엽 기자)구의역 참사 5주기를 맞아 구의역 내선순환 9-4 승강장에는 김 군과 다른 산업재해 사망자를 추모하는 글귀가 적힌 포스트잇과 국화가 놓였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김신엽 기자)
구의역 참사 5주기를 맞아 구의역 내선순환 9-4 승강장에는 김 군과 다른 산업재해 사망자를 추모하는 글귀가 적힌 포스트잇과 국화가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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