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전 오늘,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은 ‘전두환 퇴진’과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며 민주화 시위를 일으킨 광주 지역 대학생들을 강경 진압하기 위해 광주 시내에 공수부대원을 투입합니다. 공수부대원은 광주 시민들을 닥치는 대로 살상했고, 광주 외곽을 봉쇄하며 언론 통제를 감행했습니다. 10일간 계속된 유혈 진압으로 광주 시민 165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76명은 행방불명됐고, 부상자는 3,139명에 이르렀으며, 부상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람 역시 376명에 달합니다.

    역사의 대역죄인인 전 씨가 비로소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은 그로부터 십수 년 후의 일입니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은 전 씨와 노태우 씨에게 반란 수괴죄, 내란 목적 살인, 뇌물 수수 등 혐의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러한 역사적 판결이 있기까지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는 취지의 헌법재판소 결정, 국회의 5·18 특별법 제정 등 험난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법 판결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같은 해 12월, 전 씨와 노 씨는 구속 상태에서 풀려납니다. 형이 확정되기 전부터 대선 후보 등 유력 인사들이 국민 대화합을 명분으로 두 사람의 사면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면서 논의가 오가기 시작했고, 이에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협의를 통해 두 사람에 대한 특별 사면을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전 씨는 출소 이후 지금까지 연희동 자택에서 경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씨는 사면 이후에도 전혀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며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가 하면, 역사 왜곡과 망언을 일삼기도 합니다. 그의 회고록은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왜곡 서술로 법원으로부터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고, 5·18 민주화 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후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전 씨 특별 사면의 명분이었던 ‘국민 대통합’. 과연 그곳에 5월의 광주 시민은 있었을까요?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던 희생자에게, 가족의 시신이 안치된 관 앞에서 오열하던 유가족에게, 지금도 당시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전 씨의 특별 사면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요? 자신이 저지른 파렴치한 범죄에 대해 일말의 사과도, 미안함도 없었던 그를 사면한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결정이었냐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다 보면 1997년의 데자뷔를 보는 듯합니다. 지난 1월 1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당시 대표가 여권으로서는 처음으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필요성을 제기하며 전직 대통령 사면론에 불을 지폈고, 지난달 21일에는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건의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에는 국민의힘 김태흠 의원이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은 국격 문제라고 주장하며 문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특가법상 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지난해 10월 29일 징역 17년형이 확정됐고, 박 전 대통령은 직권남용과 강요, 특가법상 뇌물수수, 공무상 비밀 누설,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지금까지 확정된 형만 징역 22년입니다. 피고인이 한때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점, 혐의를 부인하며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은 점,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아직 재판이 진행 중임에도 벌써 사면론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는 점까지 많은 부분에서 전 씨의 사례와 닮았습니다.

    그렇기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에게 다시금 묻습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국민은 누구입니까? 이 사면은 과연, 누구를 위한 사면입니까?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